네이버 관계자는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는 서비스에 국적을 갖다 붙이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다. 네이버 창업자인 그는 언론과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데 라인이 상장했던 2016년 7월 일본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와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당시 매체가 “일본에서는 라인을 한국 회사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네이버가 라인 주식의 약 83%(당시 기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라인은 한국 회사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을 거다. 그런데 그 논리라면 네이버 주식의 약 60%는 외국인 투자자 소유기 때문에 네이버도, 그 자회사인 라인도 한국 회사가 아니라는 결론이 된다.” 그는 “라인의 국적을 묻는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도 해본다. 건전하고 생산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불필요한 이슈를 만들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다지 논할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고 잘라 말했다.
글로벌 비즈니스에 국적은 무의미하다는 네이버 측과 달리 일본 내에서는 라인을 두고 “너는 어디서 왔냐”고 끊임없이 물어왔다. 국적 리스크다. 라인을 둘러싼 도시전설 같은 괴담은 온라인에서 적지 않게 떠돈다. ‘누가 진짜 라인 사장일까’ ‘한국과 일본 중 어디가 진짜 본사일까’ ‘라인은 진짜 어디서 만든 걸까’….
모리카와 아키라 라인 전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국’이란 단어를 피해왔다. “라인은 아시아의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라인의 성공을 다룬 일본 서적 ‘한류경영 LINE’에서는 이를 경영을 위한 판단이라고 봤다. 일본 유명 온라인 경제매체인 ‘뉴스픽스’가 펴낸 이 책에서는 “라인이 일본발 오리지널 앱이라는 이야기가 돌 때 한국의 존재는 가급적 지우는 편이 좋다는 경영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례적 행정지도와 재빠른 지분매각 요구
“굉장히 이례적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지난 5월 3일 네이버 실적발표 자리에서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에 관해 처음 입을 열었다. 하나의 사안으로 두 차례 행정지도를 꺼낸 일본 정부의 조치는 최 대표의 말처럼 평범한 사안은 아니었다.
지난해 라인에서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논란 때부터 변수가 생겼다. 2023년 11월 라인 이용자 정보 44만건이 네이버 위탁업체 서버가 해킹당하면서 유출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 정부는 이런 보안상 허점이 발생하게 된 배경으로 거버넌스, 즉 라인을 서비스하는 라인야후의 지배구조를 겨냥했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네이버클라우드에 관련 서비스를 위탁하는 라인야후는 위탁업체를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지분을 갖고 있기에 그러기 쉽지 않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소프트뱅크의 과반 취득이 대전제다.”
라인야후의 데자와 쓰요시 CEO는 지난 5월 8일 라인야후 결산 설명회에서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의지도 확인해줬다. “중대한 사태이니 최우선으로 해내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했다.
이날 설명회에서 나온 큰 틀의 내용은 3가지로 요약된다. 하나, 시스템이나 서비스 면에서 네이버와 분리해 독립하기로 했다. 둘, ‘라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신중호 CPO(최고제품책임자)는 사내 이사직을 물러날 예정이다. 셋,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구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로부터의 기술적 독립은 원래 하려던 절차였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 않다. 신중호 CPO의 사퇴도 개인정보 유출에 책임을 진다는 측면에서 일본 기업식 대처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물밑 협상이 아닌 공개 매각 요구는 방식이나 속도 면에서 놀랐다”고 말했다.
PC시대 급성장을 했던 네이버는 한국 시장만으로는 더 큰 성장이 어렵다고 봤다. 다른 빅테크들처럼 글로벌 시장에 나가야 할 절박함을 느꼈다. 네이버가 일본 시장에 진출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다. 자본금 1억엔으로 네이버재팬을 설립해 검색 시장에 진출했지만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다. 야후재팬과 구글의 아성 탓에 힘 한번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실패를 곱씹고 있었던 때, 뜻밖의 기회가 왔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내 전화와 문자 등 기존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자연재해 앞에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줬다. 이재민들은 가족과 친지들과 전화하기 위해 애썼고 망 과부하로 통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나오곤 했다. 네이버는 이때 지진에도 끄떡없는 안정성을 갖춘 메신저인 라인을 내놨다. 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인 2011년 4월에 착수해 6월에 애플리케이션을 내놓았다. 지진의 공포로 사람들이 불통의 무서움을 느끼고 있을 때 라인은 혁신 서비스로 일본 내에서 이름을 알렸다.
성장한 라인은 일본에서 국민 메신저가 된다. 일본 내 곳곳을 혈관처럼 연결하고 있다. 일본 인구 1억2000만명 중 약 9600만명이 사용한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일본인 대부분이 라인을 사용한다. 해외 진출에도 성공해 자국산 메신저가 없던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도 주류 메신저가 됐다. 이처럼 라인은 네이버의 해외 진출 염원을 이뤄준 보물이다. 그리고 그 보물은 지금 한·일 정치외교의 중심 이슈가 돼버렸다.
2019년 네이버는 라인 서비스를 일본 IT 대기업인 소프트뱅크의 야후 서비스와 합치기로 한 결정을 세상에 알렸다. 두 기업은 일본 시장에서 간편결제 시장에서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써가며 출혈경쟁을 하던 관계였다. 하지만 라인페이는 야후 ‘페이페이’의 벽을 쉽게 넘기 힘들었고 공유오피스 기업인 ‘위워크’의 투자 실패로 실적에 타격을 받았던 소프트뱅크도 새로운 활로가 필요했다. 한국기업과 일본기업의 라인 공동지배는 지금까지 유지돼 오고 있다. 라인의 운영사인 라인야후 지분 65%는 에이홀딩스라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에이홀딩스는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지분을 합작해 세운 회사다.
정부 주요 장관들 “자본 관계 재검토”
라인이 성공을 거둘 때마다 라인이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걸 일본 언론들은 강조해왔다.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일본발(日本發)’이라는 수식어를 라인 앞에 붙였다. 일본 보수 언론들은 라인 경영진들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너희는 일본산이냐”라는 질문을 매번 물었다. 라인야후에서 지난해까지 일했던 한 관계자는 “라인에서 일한다고 말하면 젊은 친구들은 그닥 궁금해 하지 않는데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라인이 한국 것이 아니라 일본 것 아니냐며 묻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했다고 보는 쪽에서는 이런 대중의 관심을 일본 정부가 건드렸다고 본다. 법리적 논리로 이 문제를 건드리기 어렵기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했다는 얘기다. 아사히신문은 “총무성의 자본 관계 재검토 요구에는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의 판단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경제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2021년 새로 만든 자리가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이다. 다카이치 담당상은 ‘여자 아베’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강경한 우익 정치인이다. 매년 2차례 야스쿠니신사를 직접 참배하며 “총리가 되면 독도에 한국이 구조물을 더 못 만들게 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지난 4월 11일 주간지 주간문춘은 다카이치 담당상과 가진 인터뷰를 공개했다. 그는 “총무성의 행정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보안 리스크를 적확하게 파악해 보안 거버넌스를 모회사 등을 포함한 그룹 전체에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라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방침을 재차 확인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라인을 이용하지 않는다.”
국민 정서를 건드리며 내건 데이터 주권주의는 일본 정부의 연막일 뿐, 실상은 ‘아날로그 일본’을 탈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본은 지금 관련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정부 차원에서 AI전략회의를 신설했고 AI 사업자 가이드라인까지 발표하며 투자 유치에 나섰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세계디지털경쟁력 평가에서는 한국은 6위, 일본은 32위였다. 관련 분야에서 뒤처져 있는데 시장성이 뛰어나니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오라클 등 글로벌 기업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보따리를 들고 일본을 찾는 중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 디지털 일본 구축에 ‘일본산’ 타이틀을 붙인 라인은 탐나는 플랫폼이다. 자국의 ICT 생태계는 물론, 동남아의 생태계까지도 한순간에 확보할 수 있다. ICT 플랫폼을 안착시키기 위해 겪어야 할 실패나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한 일이다.
손쉬운 매각은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
라인야후 측의 지분 매각 요구에도 네이버의 대외 입장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네이버의 중장기적 전략 관점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분 매각도 포함한 여러 대안이 논의 중이지만 일본 측 의도대로 소프트뱅크에 손쉬운 매각은 하지 않을 거라는 분위기다.
네이버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지분 매각이 쉽지 않은 이유가 네이버 IP를 활용한 글로벌 사업이 라인야후와 얽혀 있다. 라인야후와 네이버 관련 자회사들도 지분 관계가 있다. 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면서 재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기에 A홀딩스 지분을 넘기는 건 고도의 포토폴리오 설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로 합병할 때도 2~3년 걸렸는데 헤어지는 것도 금방 끝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네이버 내부에서는 “매각하지 말자”는 강경론도 흐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행정명령은 법적 처분과는 다르다. 그리고 지분 매각이 법원으로 갈 경우 일본 정부가 불리하다는 게 중론이다. 강제 매각 법안을 만든 미국 정부와 소송전에 들어간 틱톡처럼 강하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선 관계자는 네이버가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각을 하든 하지 않든 지분 확보가 급한 쪽은 소프트뱅크다. 협상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 그간 관(官)과 대립하는 걸 꺼려왔던 네이버지만 이번엔 달라야 한다. 지난 20여년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