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연 5.25~5.5%로 유지했다. 작년 9월부터 6차례 연속 동결이다. 그런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장에서 우려하는 금리 추가 인상설에 대해 “그럴 가능성은 낮다”라며 “연준의 다음 금리 변동 결정이 인상은 아닐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파월 의장은 늦더라도 연내에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란 신호를 보냈다. 그는 “인플레이션 목표치 2%에 도달한다는 확신이 들기까지 예상보다 더 오래 걸릴 것”이라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올해 인플레이션이 더 큰 진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근 나온 올 1분기(1~3월) 물가와 인건비 지표가 시장 전망을 웃돌면서 연내 금리 인하가 어렵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지만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의 불씨를 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래픽=양인성

◇바이든과 트럼프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파월

이날 파월 의장의 발언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엿보였다는 평가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고금리에 지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반대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이를 막기 위해 연준이 대선 전 금리를 내리는 것은 바이든의 재선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파월 의장은 정치적인 사람”이라며 “금리 인하를 추진하는 등 민주당을 도울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금리를 내리더라도 대선 후에 하라는 것이다.

이 와중에 최근 시장 전망보다 높게 나온 물가와 인건비 지표로 인해 금리 인하 개시 시점이 뒤로 밀리며 트럼프 쪽으로 기우는 듯했던 금리 전망은 이날 파월 발언으로 다시 균형을 찾았다. 파월 의장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 없이 다소 늦어지겠지만 연내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향후 FOMC는 미국 대선일(11월 5일) 전에는 6·7·9월 세 차례 열릴 예정이다.

◇거센 도전받는 연준 독립성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연준은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하지만, 선거의 해가 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은 대선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중대 변수가 됐다. 선거 전 금리를 내리면 미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강해져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 유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금리가 이어지면 바이든 정부에 대한 ‘경제 심판론’이 힘을 얻어 트럼프 재집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앞서 시장에선 연준이 이런 오해를 피하려 대선이 한참 남은 6월에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강한 경제에 6월 금리 인하는 어렵다는 전망이 늘면서 연준은 대선 직전까지 그 타이밍을 둘러싼 고민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준을 향한 정치적 외풍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조차 연준의 금리 정책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공개 석상에서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펜실베이니아주 선거 유세에서 “금리가 내려갈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어 지난달엔 “올해 안에 금리가 내린다는 종전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민주당 인사들도 거들고 나섰다. 미 하원 예산위원회의 브렌단 보일 민주당 간사는 1일 FOMC 후 성명을 통해 “연준 위원들은 금리를 너무 오랫동안 너무 높게 유지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했다.

◇파월 “대선은 연준 고려 변수 아냐”

이에 맞서 트럼프 후보는 ‘대선 전 금리 인하=바이든 재선 지원’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후보 참모·지지자들이 작성한 ‘연준 정책 비전 초안’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연준이 금리를 결정하기 전 대통령과 비공식적으로 협의하도록 하는 등 연준을 길들이는 노골적인 방안이 담겼다고 한다.

이를 겨냥한 듯, 전직 연준 의장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날 연설문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 제도가 위협받을 경우 연준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나아가 미국과 전 세계의 경제성장과 금융 안정이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월 의장은 1일 기자회견에선 “대선은 연준이 고려하는 변수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금리를)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하며 다른 건 보지 않는다”고 했다.

공화당 성향인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 때인 2018년 임명돼 바이든 대통령 시절 연임했다. 트럼프는 집권 시절엔 연준이 지나치게 긴축적이어서 경제성장을 짓누른다며 자신이 임명한 파월 의장과도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