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맛나향 고추작목회장(59)은 기타 연주자, 덤프트럭 운전을 거치며 인생의 매운맛을 세게 봤다. 지금은 매운맛 만드는 일을 한다. 경남 밀양에서 18년째 고추 농사를 하고 있는 김영환 회장을 만났다.
◇돌고 돈 인생
경남 밀양시 무안면은 ‘물 안’이란 말에서 이름을 땄다. 물이 많고 땅이 비옥해 고추 재배 역사가 300년이 넘는다. 무안 풋고추는 과피가 두껍고 매끈하면서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매운맛 없이 단맛이 강한 ‘미인 고추’, 과피가 두껍고 수분이 가득한 ‘모닝 고추’ 등 다양한 신품종 고추도 난다. 이곳에서 4000평(약 1만3223㎡) 규모로 고추 농사를 짓는 김영환 회장의 취미는 베이스 기타 연주다. 마을 행사가 있을 땐 공연도 한다.
한때는 기타 연주가 그의 직업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부터 기타를 잡았습니다. 남들은 한량으로 봤지만 전 목숨 걸고 치열하게 연주했어요. 20대 중반 천안의 한 레스토랑에서 하루 4시간씩 연주하고 월급으로 180만원씩 받았습니다.”
당시 그에겐 음악이 인생이었다. 해고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경영난으로 해고됐어요. 더는 내 고집을 부릴 수 없었습니다. 아내와 한 살배기 아들을 먹여 살려야 했거든요.”
마침 대형 운전면허를 갖고 있었다. “24t짜리 덤프트럭 운전대를 잡았어요. 남들은 오전 7시에 나올 때 전 4시에 나왔죠. 그렇게 했더니 남들 한 달 700만원 정도 벌 때, 전 1000만원씩 벌었어요.”
욕심이 생겼다. “개인사업자를 내고 한 대에 1억원 넘는 덤프트럭을 늘려나갔어요. 그렇게 덤프트럭 5대가 됐습니다. 거의 빚이었지만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될 걸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로 한순간에 부도를 맞았습니다. 정말이지 절벽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죠.”
고추 농사를 짓던 고향 친구가 손을 내밀었다. “양수기 같은 자기가 쓰던 장비를 주면서 농사를 지어보라더군요. 땅은 절대 배신 안 한다면서요. 수중에 남은 돈 350만원으로 300~350평짜리 밭을 샀습니다. 시설 공사 맡길 돈이 없어 헌 자재를 가져다 직접 지었죠. 그렇게 고추 농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겨울에 나는 무안 풋고추
고추는 고온성 작물이다. 김 회장의 고추 하우스는 한겨울에도 최저기온이 18℃를 내려가지 않는다.
―풋고추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9월 중순에 모종을 심습니다. 모종은 한 포기에 1700원 정도 하는데요. 심은 지 40~50일이 지나면 1차 유인을 합니다. 고춧대를 옆줄에 묶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죠. 2차 유인을 할 땐 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위로 세워줍니다. 심은 지 60일 이후부터 열흘에 한 번씩 풋고추를 수확합니다. 이듬해 6월까지 부지런히 따야 해요.”
―어떻게 하면 매운 고추가 되나요.
“물을 덜 주면 매운 고추가 되는데요. 햇볕의 영향도 많이 받습니다. 햇볕을 많이 본 고추가 맵죠. 같은 땅에서 같은 양의 물을 주더라도, 겨울 고추보다 봄 고추가 더 매워요.”
―겨울철은 어떤 일을 많이 하나요.
“수확 작업으로 바쁩니다. 농부들은 ‘약이 올랐다’고 표현하는데요. 풋고추가 수확할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는 뜻이죠. 고추를 딸 때는 꼭지 끄트머리를 잡고 위로 젖히듯이 올려서 따야 합니다. 한 명이 온종일 따면 80~120㎏ 정도를 수확할 수 있어요.”
◇수출은 일본만 하는 이유
밀양 무안에서 난 고추는 모두 무안농협산지유통센터(이하 무안APC)로 모인다. 무안APC는 1만6528㎡ 규모로, 경매장·공동선별장·소포장 등 시설을 갖추고 있다. 10㎏ 단위 박스 기준 하루 1000~5000박스를 처리한다.
―유통센터에선 풋고추 선별을 어떻게 하나요.
“농가들이 트럭에 고추를 실어 오면, 먼저 트럭째로 무게를 잽니다. 이후 풋고추를 내린 다음 트럭 무게를 재서 고추 무게를 확인하죠. 선별장은 총 7개 라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흠집이 났거나 붉은빛이 돌기 시작한 고추, 꼭지가 빠지고 끝이 갈라진 고추는 제외하고 상품 고추만 유통합니다.”
―선별·포장한 풋고추는 어디로 가나요.
“수확 다음날 대형 마트 등 출하를 원칙으로 합니다. 한 해 평균 5억~10억원 규모 일본 수출도 하고 있어요. 풋고추는 며칠만 지나면 붉은 고추로 변하거나 꼭지가 변색되기 때문에 먼 나라로는 수출하기 어렵습니다.”
◇매운 고추 못 먹는 고추 농부
‘고추를 따서 바로 먹어도 된다’던 김 회장. 한입 베어 물더니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알고 보니 매운맛에 약하단다.
―벌이가 넉넉한가요.
“매출은 1억원이 넘습니다. 하지만 그중 70%가 비용으로 나갑니다. 전기료·인건비·약제비 부담이 큽니다.”
―고추 맛있게 먹는 법 하나만 소개한다면요.
“삼겹살 구울 때 고추도 같이 구워 보세요. 별미입니다. 통으로 올린 다음 황색이 살짝 돌 때 가위로 잘라 먹으면 매운맛은 덜하고 고소한 맛이 올라옵니다.” 김 회장의 고추는 온라인몰 ‘미스타팜’에서 특가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