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은 은퇴를 준비하는 근로자들에게 최후의 보루다. 다음 달부터 퇴직연금의 디폴트 옵션(사전 지정 운용 제도)이 본격 시행된다. 디폴트 옵션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가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더라도 사전에 정한 상품으로 투자금을 굴리도록 한 제도다. 무관심 속에 잠자는 돈이 없도록 하겠다는 취지에서 작년 7월 시범 운영을 시작, 다음 달 12일부터 의무화된다.

제도 의무화가 코앞인데도 디폴트 옵션이 무엇인지 모르는 직장인이 상당수다. 은퇴 준비는 퇴직 자산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픽=이지원
그래픽=이지원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으로 반전 노려라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41개 금융기관이 135개 디폴트 옵션 상품을 시범 운용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3개월간 25만명이 가입했고 퇴직연금 약 3000억원이 적립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1일 공시한 디폴트 옵션의 1분기 평균 수익률은 3.06%. 연간 수익률로 환산하면 12.41%에 달한다.

금융기관에서는 홈페이지나 앱 알림, 문자메시지 등으로 디폴트 옵션 지정을 알리고 있다. 본인이 해당한다면 디폴트 옵션 지정을 늦추면 안 되겠다.

◇DC형 또는 IRP 가입자만 해당

모든 퇴직연금 가입자가 디폴트 옵션을 지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근로자가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DC형이나, IRP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다. 대상자는 7월 11일까지 사전 지정 운용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근로자 퇴직급여 보장법의 법적 의무 사항이다.

선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7월 12일 이후 도래하는 원리금 보장 상품(정기예금, 이율 보증형 보험 등)의 만기가 도래하면 각 퇴직연금 사업자가 준비한 ‘대기성 자산’으로 편입돼 수익률이 낮아질 수 있다. 대기성 자산은 통상 원리금 보장 상품보다 훨씬 낮은 기본 이율만 주기 때문이다.

디폴트 옵션은 지정하고 나서도 언제든지 일반 상품으로 바꿀 수 있다. 일반 상품에서 디폴트 옵션 상품으로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다.

즉 내가 현재 운용하고 있는 상품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만기가 돌아올 원리금 보장 상품에 대해 미리 상품을 정해둔다고 제도를 이해하면 쉽다. 가입자가 무관심하거나 전문 지식이 부족해 잠자고 있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수익률을 높이려는 취지로 시행됐기 때문이다.

◇위험도 따라 5단계로 구분

디폴트 옵션 상품은 위험도에 따라 구분된다. 초저위험부터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초고위험 등 5단계로 나뉜다. IRP 사업자는 본인이 직접 선택하지만, DC형의 경우 회사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제시한 디폴트 옵션 중 초저위험을 반드시 포함, 2~4개를 결정해 규약에 반영한다. 초저위험 상품은 주로 은행 정기예금이나 보험사의 원리금 보장형 보험이며, 저위험 이상은 채권형 펀드, 채권혼합형 펀드, 주식혼합형 펀드 등 단독 또는 최대 3개 상품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 형식이다. 즉 세트 상품 같은 개념이다.

펀드 상품의 경우 목표 시점이 다가오면 위험 자산 편입 비율을 조정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는 사회간접자본(SOC) 펀드, 분산 투자 후 주기적으로 자산 배분을 변경하는 밸런스펀드(BF), 안전한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스테이블밸류펀드(SVF)가 위험도에 따라 편입돼 있다. 자신의 원금 손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성향 혹은 비용 등을 비교해보고 퇴직연금 사업자가 제공하는 디폴트 옵션을 선택하면 된다.

◇기존 정기예금 만기 자동 연장 불가

디폴트 옵션이 의무화하면서 새로 변하는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가입자가 선택한 사전 지정 운용 방법은 본인이 운용하던 원리금 상품의 만기 후 6주가 지나야 시작된다. 기존 원리금 상품의 만기일 이후 별도의 운용 지시 없이 6주가 지나면 사전 선택한 디폴트 옵션의 상품으로 매수가 자동으로 진행된다.

특히 은행의 정기예금과 보험사의 이율보증형 상품의 경우 디폴트 옵션이 시작되기 전에는 만기가 자동으로 연장됐으나, 이제는 불가해진다. 기존에는 만기에 별도의 행동이 없으면 만기 시점에 같은 상품으로 자동 연장이 됐지만 이제는 가만히 두면 대기성 자산으로 편입된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운용하면서 편하게 만기 재예치를 이용했던 가입자들도 많아 이 경우 디폴트 옵션으로 초저위험 위험 등급을 지정해놓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기존에 펀드로만 투자하고 있던 적극적 투자 유형 가입자라 하더라도 디폴트 옵션은 반드시 선정해야 한다. 회사가 직접 운용하고 관리하는 퇴직연금 확정급여형(DB) 가입자를 제외하고 모든 퇴직연금 가입자는 기존 운용 상품의 종류와 상관없이 법적으로 디폴트 옵션을 정해야 한다.

DC형으로 운영하는 사용자(회사)가 퇴직연금 규약에 디폴트 옵션을 반영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에서 시정명령을 내린다. 이후에도 미이행 시에는 회사가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