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장 등의 작업을 하는 2층에서 소형 지게차의 일종인 ‘전동차카’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더비비드 제공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과일이 유통되는 현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황원길 안성농식품물류센터 상품화사업부 부장)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농협안성농식품물류센터를 찾았다. 언덕 위에 항공모함을 얹어놓은 듯한 모습이다. 가로 320m, 세로 70m 규모로 축구장 3개를 합한 크기다.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건물로 건축 면적은 약 5만9000㎡(1만8000평)다.

400여 명의 직원 중 절반 이상이 오후 5시에 출근해 해 뜨기 전 새벽에 퇴근한다. 새벽에 농부가 수확한 농산물을 바로 다음 날 전국의 대형마트·백화점 등으로 배송하기 위해서다.

◇초과는 있어도 미달은 없다

문을 연 지 올해로 11년째인 농협안성농식품물류센터는 전국 최대 농산물유통센터다. 전국의 농산물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일종의 환승역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분류·처리한 농산물을 싣고 떠나는 차량은 2022년 기준 하루 평균 148대에 달한다. 8.5톤 트럭에 실린 양파, 무, 감자, 사과, 포도 등은 도매시장법인·중도매인·중간상인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곧바로 배송된다. 자동분류·소포장 등의 시스템을 갖춰서 3~4단계의 유통 과정 밟을 필요 없이 안성물류센터 한 곳만 거치면 된다. 절감한 물류비용은 소비자와 생산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농협안성농식품물류센터의 자랑거리는 전처리 작업이다. 소비자가 바로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세척·다듬기 등을 미리 해두는 것을 말한다. 가령 에어건으로 양파 껍질을 벗기거나 대파 뿌리를 손질하는 식이다. 농협안성농식품물류센터에서 전처리할 수 있는 농산물은 밤, 토마토, 단호박 등 40여 가지에 달한다.

전남 해남에서 재배된 바나나를 500g씩 소포장 하고 있는 모습.

전처리가 끝나면 소포장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양배추 한 통, 파프리카 2개 등 소매로 유통하기에 적절한 단위로 묶어 포장한다. 마침 두 명의 작업자가 바나나를 500g씩 포장하고 있었다. 박스에 붙은 라벨을 보니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재배된 바나나였다. 수축 진공 포장을 담당하고 있다는 김남순 씨(62)는 510~530g을 오가는 저울을 가리키며 “초과는 있어도 미달은 없다”고 설명했다.

오후 4시. 1층 배송장에 8.5톤 트럭 4~5대가 줄을 섰다. 늦은 오후부터 전국 각지에서 재배한 농산물이 들어오기 시작해 오후 8시면 장사진을 이룬다. 양창남 과장(53)은 “물량이 많은 명절엔 이 줄이 4~5㎞ 거리에 있는 남안성 IC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올라온 과일을 자동분배시스템(DAS)으로 바코드 스캔하면 배송처별로 구역의 번호가 뜬다. 바닥엔 노란색 정사각형이 그려져 있다. 총 374개로 한 거래처마다 한 칸을 할당한다. 하루 발주량은 25만~30만건에 달한다. 분배 작업자만 100명이다. 매일 새벽 3시까지 모든 물량을 분배한다.

바빠도 검품은 놓칠 수 없다. 토마토가 무르지 않았는지, 미나리가 푸른 빛을 잃지 않았는지 무작위로 뜯어 상태를 확인한다. 지역 농협에서 1차로 선별한 농산물이지만 배송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협상이 필요하다.

검수·검품·분류까지 끝난 농산물은 거래처별로 배송된다.

◇5만원에 제철 과일 한 꾸러미

안성물류센터는 2023년 5월 시작한 ‘농협과일맛선’의 품질관리·포장·유통도 담당하고 있다. 월 5만원을 내면 6가지 종류의 제철 과일 한 꾸러미를 받아볼 수 있는 과일 구독 서비스다. 주산지에서 수확한 과일이 센터에 모이면 당도 검사 등의 품질 검사와 포장을 거쳐 매일 오후 6시에 출고한다.

포장에 가장 큰 신경을 쓴다. 백승환 과장(45)은 “상품별로 칸막이를 만들어 부딪히지 않도록 했고, 1.5m 높이에서 떨어뜨리는 실험도 했다”며 꼼꼼한 포장을 자랑했다.

농협과일맛선 홍보모델 장민호(왼쪽)와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

농협과일맛선은 소비자들이 전국의 다양한 산지에서 재배되는 제철 과일을 놓치지 않고 맛볼 수 있도록 전달하자는 취지로 출발한 사업이다. 이를테면 4~5월엔 한라봉이 들어 가고 다른 만감류인 ‘카라향’이 나온다. 박영호 센터장은 “맛선의 과일은 빠르면 수확 이틀 만에 싱싱한 상태로 맛볼 수 있다”고 했다.

매월 10일을 전후해 다음 달에 선보일 과일을 정하는 상품선정위원회 회의가 열린다. 구매팀이 제안한 10가지 과일을 두고 임원진과 MD, 소비자 패널의 의견을 모아 6가지 과일을 선정한다. 다양한 품종을 접할 기회가 없는 소비자를 위해 6개 과일 중 적어도 하나는 꼭 희소 품종으로 정한다. 5월엔 하미과 멜론(수박 같은 식감에 안쪽이 주홍빛을 띠는 멜론), 6월엔 플럼코트(자두와 살구의 맛이 함께 느껴지는 신품종)를 포함하는 식이다.

과일 구독 서비스는 일반 대형마트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업이다. 박 센터장은 “안성물류센터가 하루 최대 40만건에 달하는 물량을 처리하고 있고, 전처리·소포장 등의 설비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생산량이 늘면서 평균 비용이 감소하는 현상)’가 발생해서 가능한 사업”이라고 했다.

농협과일맛선은 매월 원하는 날짜, 주소로 받아볼 수 있고 날짜·주소지 변경이 자유롭다. 박 센터장은 이어 “10만원대 명절 선물 세트와 농협과일맛선 꾸러미를 한자리에 놓고 보면 ‘5만원’의 구독료가 절대 비싸단 생각이 안 들 것”이라며 “과 크기, 당도 등 품질을 백화점에 납품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려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