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한 전현직 장차관급 관료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동호 전 내무부 장관, 전윤철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장병완 전 기획예산처 장관, 그리고 윤대희 전 국무조정실장. /남강호 기자

“포퓰리즘에 입각한 정책, 재정이 마르지 않는 샘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주장들이 정치권 일각에서 많이 나온다. 조삼모사처럼 저녁에 먹을 걸 낮에 당겨 먹으면 저녁에 굶을 수밖에 없다.”(장병완 전 기획예산처 장관)

25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6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에 모인 전직 경제 부총리와 장관들은 한목소리로 “포퓰리즘 때문에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60년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번영을 이루는 데 성공했지만 포퓰리즘을 근절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60년은 어둡다는 것이다.

1998년 예비타당성조사 제도를 만든 진념 전 부총리는 “정치권에서 건전 재정 원칙에 대한 합의는 제쳐 두고 예타 기준만 낮췄다”며 “이렇게 여야 국회의원들이 박수 치고 합의하는 걸 정치라고 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지난 4월 여야는 상임위 소위에서 예타 기준을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데 합의했다. 반면 나랏빚을 일정 수준으로 묶는 재정준칙 처리는 유보했다.

전윤철 전 부총리는 “국회의원 입법이 너무 많은데 (제대로 된 고려 없이) 입맛에 맞는 걸 전부 다 발의한다”며 “국회가 어느 그룹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간호법이나 양곡법, 노란봉투법 등 특정 그룹의 표심을 노린 법안들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장병완 전 장관은 “포퓰리즘의 기저에는 ‘설마 나라가 망하겠나’ 하는 국민들의 방심이 있다”며 “경제사를 보면 잘나가는 국가가 순식간에 뒷걸음친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유럽의 이탈리아·그리스 등 포퓰리즘 때문에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추락한 나라들을 지칭한 것이다.

미·중 간의 패권 경쟁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미·중 공급망 분리가 일어나면서 중국에서 빠져나오는 제조업을 우리가 끌어올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데 해외 기업들 입장에서는 한국은 노사 문제가 심각하고 규제도 많아 매력적인 국가가 아니다. 구조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매력 있는 국가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과거에는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처럼 경제와 안보를 분리해서 접근했지만, 이제는 따로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원로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현오석 전 부총리는 “우리에겐 미·중 간 갈등, 지정학적 요인 등이 당면한 현실”이라며 “동맹을 통한 산업 정책 추구는 필수적인 전략이다”라고 했다.

이날 행사엔 최고령인 강경식(87) 전 부총리를 비롯해 이동호 전 내무장관, 진념·전윤철·현오석·유일호·홍남기 전 부총리, 박재윤 전 재무장관,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등 32명의 전·현직 경제 수장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