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부터 이틀간 진행됐던 반도체 회로 검사 장비 업체인 기가비스의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에 9조8215억원의 청약 증거금이 몰렸다. 올해 IPO(기업공개) 시장에서 가장 많은 증거금이 몰린 기록이다. 증권 업계에선 “상반기 코스닥 상장 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혔던 기가비스가 성공리에 상장하게 되면서 하반기에 대어급 상장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 나왔다.
통상 2분기(4~6월)는 국내 IPO 시장의 비수기로 불린다. 그렇지만 이달 들어 중소 ‘알짜 기업’들의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어지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올 초 마켓컬리와 케이뱅크 등 기대를 모았던 ‘대어급’ 기업들이 줄줄이 상장을 철회하면서 침체 우려를 자아냈던 IPO 시장에 온기가 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일부 상장 기업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는 것 등은 위험 요소로 꼽힌다.
◇공모 청약에 10조원 가까이 몰려
한동안 국내 증시에 2차전지 열풍이 불면서 IPO 시장은 투자자들의 관심권에서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분위기가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기가비스는 지난 9~10일 이뤄진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경쟁률이 1669.6대1였고, 전체 응찰 기관 1757곳 중 95% 가 희망 공모가 상단 이상을 써낼 정도로 경쟁이 뜨거웠다. 실제 공모가는 4만3000원으로 결정돼 희망 범위(3만4400원~3만9700원)를 뛰어넘었다.
지난 17일 상장한 스마트 영상감시 서비스 기업 트루엔도 1481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증거금도 5조6000억원이나 몰렸다. 10일부터 이틀간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주 청약을 실시한 사이버 보안 기업 모니터랩은 경쟁률이 1785대1을 기록하며 올해 최고 경쟁률 기록을 경신했다. 앞서 IPO 시장에서 올해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곳은 유아 용품 전문 업체 꿈비(1773대1)였다.
통상 2분기가 상장 비수기인 점을 고려하면 이달의 IPO 시장 활기는 이례적이다. 한국거래소의 2018~2022년 월별 신규 상장 기업 수 추이 자료에 따르면, 4월 1.8개, 5월 3.6개, 6월 5.6개 등으로 같은 기간 월평균 상장 기업 수(6.3개)에 못 미친다.
◇흥행 성공 이유는 ‘몸값 낮추기’?
IPO 시장이 다시 활기를 띤 데에는 기업들이 희망 공모가를 낮춘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니터랩의 경우 증권 신고서 제출 때 희망공모가 산출에 참고하는 피어그룹(비교기업군)에서 해외 기업을 배제해 공모가를 시장 눈높이에 맞췄다. 고평가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와인 수입 전문기업 ‘나라셀라’도 피어그룹을 재설정해 공모가를 기존 2만2000~2만6000원에서 2만~2만4000원으로 낮춰 지난 16일부터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을 진행했다.
다만 최종경 흥국증권 연구원은 “IPO 시장이 ‘좋다’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상장 기업의 개수가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상장 후 수익률이 잘 나오는 것이 중요한데 현재 시장은 기업들 입장에서 좋은 환경은 아니다”며 “작년에 비해 IPO 시장이 아주 좋다기보다는 회복세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공모주가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모니터랩과 공모 일자가 겹친 인공지능(AI) 영상인식 전문기업 씨유박스는 일반 청약에서 53대1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신규 상장주(스팩, 리츠 제외) 중 티이엠씨(0.81대1), 오브젠(5.97대1)에 이어 셋째로 낮은 경쟁률이다. 다만 티이엠씨와 오브젠 모두 18일 기준 공모주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어 씨유박스도 상장 후 반전을 기대해 볼 수는 있다.
공모가보다 주가가 하락한 경우도 있다. 지난 4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세포 치료제 전문기업 에스바이오메딕스의 경우 상장 첫날 시초가는 2만3150원으로 공모가(1만8000원)를 넘어섰지만 18일 종가는 1만6140원을 기록했다.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일부 종목이 상장 후 주가가 좋지 않은 점, 코스닥 상승률이 주춤한 점 등은 하반기 IPO 시장 활성화에 걸림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