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연금이 작년 말 기준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주식을 1218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요즘 해외주식 투자가 보편화됐지만 개인 투자자에게는 조금 낯선 종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투자 종목 중에는 생소한 종목도 많다. 투자 대상 국가도 늘면서 국민연금은 현재 페루 주식에도 투자한다. ‘분산 투자’는 좋지만 그만큼 신경 써야 하는 위험도 세계 각지에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17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국회 송언석 의원(국민의힘)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국민연금이 투자하는 국가별 증시 수는 49개다. 최초에는 22개였는데 이제는 두 배 이상 수준으로 늘어난 것이다. 전체 투자 종목 수는 5642개에 이른다.

◇페루 주식에도 투자하는 국민연금

페루 주식은 직접 투자보다는 간접 투자를 통해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하는 펀드에 페루 주식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 주식을 페리코프라는 주식으로 자동차 부품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주식으로, 국민연금은 이 회사 주식을 지난해 8월 기준 4000만원어치 정도 보유하고 있었다.

페루 주식은 딱 한 종목 보유하고 있는데 베트남과 루마니아 주식도 한 종목만 보유하고 있다. 종목 수는 미국 증시가 1565종목으로 가장 많고, 홍콩(795종목), 중국(785종목), 일본(550종목) 이 그다음으로 많다. 영국(223종목), 캐나다(167종목), 인도(119종목), 호주(111종목), 태국(104종목)도 투자 종목의 수가 100종목 이상이다.

◇증시별 투자 금액 1위 종목은?

그렇다면 증시별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무엇일까? 국민연금은 미국의 애플 주식은 9조2000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 대만 증시에서는 반도체 기업 TSMC 주식을 많이 가지고 있고, 네덜란드 증시에서는 반도체 핵심 장비를 생산하는 ASML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홍콩 증시에서는 IT 기업인 텐센트, 일본 증시에서는 자동화 설루션 기업 키엔스가 보유 금액 1위 종목이다.

다른 나라 증시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 투자 규모 1위 종목인 경우가 많다. 스위스 주식 시장에선 식품 기업 네슬레가 투자 금액 1위(1조9000억원)이고, 덴마크 증시에선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독일 주식 중엔 벤츠 주식(1조원)을, 프랑스 주식 중에는 명품기업 루이비통 모에헤네시 주식(9000억원)이 해당 국가 증시 내에서 국민연금 최다 보유 종목이다. 중국 증시에선 최다 보유 종목이 귀주모태주(구이저우마오타이주)다.

◇최다 보유 종목이 ‘금융주’인 곳도 다수

전체적으로 보유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금융주, 특히 은행주가 국민연금의 ‘최애’ 종목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인도 증시에서는 주택 구입 시 대출 등을 해주는 하우징 디벨롭먼트 파이낸스가 가장 많이 보유한 종목(3300억원)이다. 싱가포르에서는 DBS그룹(3100억원), 인도네시아에서는 센트럴 아시아 은행(2300억원) 등이 보유 금액 1등이다. 태국 증시에서도 카시코른 은행 주식을 1800억원어치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주식 중에서도 레우미 은행 주식이 최다 보유 종목이다. 중동 국가에서도 모두 보유 금액 1위는 은행주다. 사우디아라비아(알 라지 은행), 카타르(카타르 은행), 쿠웨이트(쿠웨이트 은행) 등이다. 전 세계 금융위기, 특히 은행주의 위기는 국민연금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은행 위기는 더 큰 위험으로 연결

은행의 위기는 더 큰 위험으로 연결된다. 이번 SVB 파산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주식 외에도 채권까지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국민연금은 SVB 채권도 135억원어치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은행 예금은 전액 보호해 주기로 했지만, 주식·채권 등은 대상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거래중지 중으로 단기 대응은 어려우나, 관련 사항에 대해 위탁운용사의 면밀한 검토와 대응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국민연금의 대체투자(주식·채권이 아닌 사모주식·부동산 인프라 투자) 위탁운용사 중에서도 SVB에 계좌를 두고 있는 곳이 있다. 국민연금은 “대체투자 기준 총 181개 위탁운용사 중 15개 운용사의 일부 펀드에서 SVB에 관리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며 “미 정부에서 예금자 보호 방침을 발표함에 따라 예금 손실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되나, 시장 경색 가능성에 대해 면밀히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했다.

송언석 의원은 “최근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과 뉴욕 시그니처뱅크 파산 사태, 그리고 스위스 크레디트 스위스(CS)의 유동성 위기 등으로 볼 때 전세계 자본 시장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국민들의 노후보장 자금인 국민연금은 면밀한 리스크 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