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금융 시장이 불안정한 가운데 안전 자산인 금값과 위험 자산인 가상화폐 가격이 함께 오르고 있다. SVB 사태 직후인 지난 10일 급락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하루 만에 상승세로 돌아선 데 이어 14일에는 올 들어 최고치인 2만4000달러(약 3141만원) 선을 돌파했다. 같은 기간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금의 가격도 5%가량 뛰었다. 전문가들은 금과 가상화폐 모두 미국의 금리 인상 중단 기대감 때문에 오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을 내놓고 있다.
◇가상화폐가 피난처? 비트코인, 하루 만에 급등세
대부분의 가상화폐들은 지난 10일 SVB가 파산 절차에 돌입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급락했다. 당시 비트코인의 가격이 하루 사이 10% 급락해 1만9600달러 선까지 말렸고 이더리움(-9%), 바이낸스코인(-7%) 등 대부분이 하락했다. 특히 미국 달러화와 같은 가치를 유지한다는 ‘스테이블코인’인 USD코인도 준비금의 일부가 SVB에 묶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1일 한때 78센트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주말에 쉬는 주식시장과 달리 가상화폐 시장은 연중무휴로 거래된다.
하지만 반등도 빨랐다. 가상화폐 가격은 12일 미국 정부가 SVB 고객의 예금을 전액 보상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상승세로 전환했다. 14일 오전에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24시간 전 대비 13% 급등하며 2만4000달러를 넘어섰고 이더리움과 바이낸스코인도 각각 9% 상승하는 등 대부분의 가상화폐가 하락폭을 회복했다. USDC도 1달러를 회복했다.
가상화폐의 강세는 투자자들이 일종의 피난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가상화폐 전문 업체 펀드스트랫의 디지털 자산 전략 책임자 숀 패럴은 코인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랠리는 일부 투자자들이 중앙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중앙은행의 취약성과 비트코인을 믿는 투자 집단이 랠리를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코인데스크는 “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비트코인이 상승한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이날 급등은 대개 가격을 끌어올리는 ‘쇼트 스퀴즈’(short squeeze)’ 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쇼트 스퀴즈란 주가 하락을 예상해 주식을 빌려서 매도했던 공매도 투자자들이 주가가 급등하면서 발생하는 손실을 막기 위해 해당 주식을 매입하는 행위를 뜻한다. 암호화폐 데이터 업체 코인글래스에 따르면 이날 약 3억달러 규모의 공매도가 청산됐다.
◇달러 가치 떨어지자 금값도 ‘훨훨’
13일(현지 시각)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4월물 금 선물 가격은 전일 대비 2.6% 오른 온스당 1916.50달러를 기록했다. 금 현물은 2.44% 오른 온스당 1821.63달러로 지난달 초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3거래일 동안 5%가량 상승한 수치다.
금값 상승은 SVB 파산으로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우려한 미 금융 당국이 그동안의 긴축 정책에서 벗어나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나온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안전 자산 중에서도 달러 가치가 급등하고 금값은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하지만 이번에 금리 인상이 중단될 경우 지난해와 반대로 달러값은 떨어지고 금값이 오른다는 것이다.
가상화폐와 금값은 올 초에도 금리 인상 중단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식시장보다 앞서 오름세를 보인 적이 있다. 미 경제 매체인 CNBC에 따르면, 가상화폐 전문가인 노엘 애치슨 이코노미스트는 14일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느린 금리 인상과 낮은 최종 금리, 그리고 은행 지원을 위한 자금 투입은 변동성을 높이기는 하지만 더 큰 유동성을 의미한다”며 “가상화폐는 가치를 판단할 실적이나 수익률이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시장 유동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과 가상화폐 시장의 전망은 엇갈린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사실 지금 가상화폐 가격 급등 원인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며 “금값은 안전 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이 유입되며 오르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가상화폐는 새로운 투자금 유입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가격만 오르고 있어 얼마나 지속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