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지난 7일(현지시각) 금리인상 기조를 당분간 유지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연합뉴스

미국 물가가 잡히고 경기가 둔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상승한다는 지표가 잇달아 나오면서 이른바 ‘노 랜딩(no landing·무착륙)’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 경기가 소프트 랜딩(연착륙)이나 하드 랜딩(경착륙) 대신 계속 ‘고공 비행’을 한다는 노 랜딩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물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상의 고삐를 다시 조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지난해 이후 이어진 고금리 환경에 타격을 입은 글로벌 경제에 더 큰 충격이 번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21일(현지 시각)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이 발표한 미국의 2월 제조업·서비스업 종합 구매관리자지수(PMI)는 8개월 만의 최고치인 50.2를 기록했다. PMI는 기업에서 자재 구매를 담당하는 직원이 경기를 어떻게 보는지를 가늠하는 지표다.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수축을 뜻하고 높을수록 경기 확장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서비스업 PMI는 50.5를 기록해 전월(46.8)보다 크게 높아졌고, 제조업 PMI도 47.8로 전달(46.9)보다 상승했다. 모두 전문가 예상치를 뛰어넘는 수치다.

경기가 호전됐다는 소식이 시장엔 되레 악재로 작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경제가 너무 뜨거워 연준이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높은 금리를 유지하게 되면, 미래에 급격한 경기 침체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져 시장에 더 많은 고통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불안이 확산하면서 22일 한국 시장에서 증시가 하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충격이 발생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1.7%, 1.9% 하락했고,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1300원을 넘어섰다. 일본 닛케이평균(-1.34%), 중국 상하이종합(-0.47%), 홍콩 항셍(-0.51%) 등 아시아 증시도 동반 하락했다.

미국 고용·물가에 이어 기업경기까지 호조를 보이면서 연준이 시장 기대처럼 긴축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연준이 다음 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빅 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밟으리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런 전망에 21일 미 2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인 연 4.67%로 상승했다.

◇3월 빅 스텝 전망도

이미 연준 내 매파(긴축 선호) 인사들은 3월 ‘빅 스텝’ 가능성을 잇달아 언급하고 있다. 지난 16일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회의에서 금리 인상 폭 축소를 지지하지 않았다. 3월 회의에서 금리 인상 폭 확대를 지지할 수도 있다”고 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도 같은 날 “다음 회의에서 0.5%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할 설득력 있는 지표를 보았으며, 인플레이션이 완강하게 지속된다면 우리는 금리를 더 높일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2년 만기 국채 금리

연준이 다시 금리 인상 폭 확대를 거론하는 것은 최근 나온 지표들이 인플레이션이 진정되기는커녕 다시 불붙고 있다는 신호를 보이고 있어서다. 지난달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달 대비 0.5%로 다시 반등하는 모습을 보인 데다, 1월 고용은 51만7000명(비농업)으로 예상치(18만명)의 3배에 육박했다. 생산자물가, 소매판매 등 최근 나온 다른 지표들도 모두 예상치를 뛰어넘으며 경기·물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연준이 더 적극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시장 채권 금리를 통해 미국 기준금리 전망을 집계하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연준이 3월 회의 때 빅 스텝을 밟을 가능성은 21%까지 올라갔다. 한 달 전엔 이 가능성이 ‘제로(0%)’였다.

美 긴축 공포에… 코스피 1.68% 하락 - 미국의 긴축 강화 공포로 한국 증시가 내려앉았다. 22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68% 하락한 2417.68로, 코스닥은 1.88% 떨어진 778.51로 장을 마쳤다. 미국 경기가 하강하지 않고 고공 행진을 계속할 것이라는 ‘노 랜딩(무착륙)’ 시나리오가 힘을 얻자, 긴축 우려에 미 증시가 하락하고 국내 증시도 그 영향을 받은 것이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뉴스1

◇미 기준금리 여름엔 6%까지?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3월과 5월엔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고, 경기와 인플레이션을 추가로 식히기 위해 6월에 0.25%포인트 인상을 한 번쯤 더 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지난 기준금리 결정 회의 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두어 번(couple more) 금리 인상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예고해 기준금리 인상이 두 차례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열어뒀었다.

얀 해치우스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FT에 “우리는 연준이 6월에도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더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현 금리(연 4.75%)보다 0.75%포인트 높은 5.5%가 최종 금리가 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3월, 5월, 6월 세 차례 0.25%포인트 금리 추가 인상을 전망한 상태다.

미국의 경기가 식지 않고 고용도 호조를 보이면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반등하고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올릴 수 있다는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은 이달 초 캘리포니아주의 한 거리에 세워진 구인 광고. /AFP 연합뉴스

문제는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6월에 멈추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이 안 잡히고 경기가 뜨겁게 유지될 경우 연준은 이후에도 금리를 계속 올릴 가능성이 있다. 7월까지 연준이 네 차례 연속 금리를 끌어올릴 경우 기준금리는 6%에 달하게 된다.

연준의 긴축 기조가 강화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면서 시장은 냉각되는 분위기다. 21일(현지 시각) 다우평균은 2.1%, S&P500과 나스닥 지수는 각각 2%, 2.5% 하락했다. 올해 들어 낙폭이 가장 컸다. JP모건은 “연준은 거시적 경제지표가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정적으로 나와야 피벗(정책 전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역사적으로 봤을 때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기 전까지 주식은 바닥을 치지 않았고 연준이 금리 인상을 중단하기 전까지 최저점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경우 증시가 지금보다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노 랜딩(No landing·무착륙) 시나리오

공항에 착륙하려던 비행기가 다시 상승하는 것처럼 미국 경기가 연착륙이나 경착륙 대신 아예 착륙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이 올해 전망을 하면서 내놨던 시나리오 중 하나다. 소프트 랜딩(연착륙)은 경기가 둔화되면서 물가도 잡혀간다는 뜻인데, 노 랜딩은 경기 과열이 진정되지 않고 물가도 계속 오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