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국내 증시 상승세를 주도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이달 들어 눈에 띄게 약해졌다. 아직 ‘팔자’로 돌아서지는 않았지만 주간 순매수액을 비교하면 지난달 최고점 대비 2조5000억원가량 급감했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추세가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촉발된 달러화 강세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은 환율 추이와 함께 오는 23일 있을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오르자 외국인 매수세 감소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수세는 최근 4개월간 계속됐지만 지난 1월에 특히 강세를 보였다. 1월 넷째 주에는 설 연휴가 있어 실질적인 거래일이 3일에 불과했지만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들의 순매수액이 2조5543억원에 달했다.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순매수액은 1조원 미만으로 뚝 떨어지며 감소세를 보이다가 지난주(13~17일)에는 485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외국인 매수세가 잦아든 것은 환율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지난 1월 1달러당 1230원대까지 낮아졌던 원·달러 환율은 이제 1300원을 목전에 앞둔 수준까지 올랐다. 지난해 연말 미국의 금리 인상기가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기대감 속에 사라졌던 ‘킹 달러(달러 가치 강세)’ 현상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자료=한국거래소

달러화 강세는 조만간 끝날 것으로 기대했던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기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촉발됐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기 대비 6% 올라 시장 전망치(5.4%)를 넘어섰다. 앞서 발표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이 6.4%로 시장 전망치(6.2%)보다 높았다. 인플레이션이 쉽게 꺾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자 당초 연 5.25%가 고점일 것으로 예상됐던 미국 기준 금리가 5.5%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달러 확보에 나선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국에서는 주식이나 채권을 매도해 가격이 떨어진다.

◇외국인 자금 향방은 금리·환율에 달려

외국인들은 20일 코스피에서 3124억원 순매도, 코스닥에서는 1986억원 순매수하며 혼조세를 보였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5.0원 내린 1294.5원에 마감했다. 미래에셋증권 김석환 연구원은 “반도체 대형주 위주로 외국인들이 매도세를 보이며 코스피 지수가 하락했다”면서 “이번 주 미국의 PCE 물가지표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대한 관망 심리가 작용하며 종목 장세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외국인들이 아예 매도세로 전환한 것은 아니다. 김승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선물시장에서 외국인들은 여전히 매수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적극 매수는 아닌 상황”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경제 재개가 본격화되면서 다시금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로 글로벌 자금이 몰릴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외국인 자금이 국내 주식 시장에서 계속 빠져나갈지 여부는 앞으로 달러 가치의 움직임과 우리나라 금리의 향방에 달려있다. 시장에서는 오는 23일 열리는 한은 금통위에서 우리나라 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연준은 다음 달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 한미 금리 차 역전이 주식시장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동결할 전망이지만, 한미 금리 차가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에는 부담이 존재한다”며 “특히 외환시장이 재차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한은의 기준 금리) 추가 인상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경제지표가 예상을 벗어나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단기적으로 확대됐다고 해서 곧바로 국내 통화정책에 변화를 줄 수는 없다”며 “큰 틀에서 경기, 물가 환경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 기준금리는 당장 추가 인상도, 향후 인하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