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 국제 컨벤션 센터(ICC)에서 열린 중동 최대 벤처 투자자 행사 ‘아워크라우드 글로벌 인베스터 서밋 2023′에는 미국·아랍에미리트·일본 등 전 세계 81국에서 몰려든 투자자 9000여 명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1만2000㎡ 크기의 전시장이 인파로 가득 차 보행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스라엘 최대 크라우드 펀딩 VC(벤처캐피털)인 아워크라우드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코로나 기간 중단됐다가 올해 2년 만에 재개됐다. 일본에서 온 한 투자자는 “최근 참가했던 투자 행사 중에 가장 사람이 붐비는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개막 행사가 열린 메인홀. 거대한 무대 화면에는 이스라엘 생성형 AI 스타트업 ‘D-ID’가 제작한 조나단 메드베드 아워크라우드 CEO(최고경영자)의 환영 인사 영상이 재생됐다. AI가 메드베드의 얼굴 사진 토대로 몇 초 만에 만든 다양한 디지털 아바타들이 영어·아랍어·한국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환영합니다’를 외쳤다. 길 페리 D-ID CEO는 “D-ID는 이미지·음성·텍스트 등 모든 종류의 생성 AI를 하나로 합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이런 융복합 서비스를 발 빠르게 내놓는 것이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저력”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 환영사를 한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도 “나 역시 최근 연설문의 일부를 챗GPT에 쓰게 했다”며 “첨단 기술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다.
◇시장통처럼 치열한 투자 미팅
이날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수백석 규모의 투자자 미팅 라운지는 항상 만석이었다. 각국 투자자들은 경매장에서 경매품을 다투듯 회사 이름이 붙여진 팻말을 높게 들고 미팅을 하러 온 창업자들의 이름을 외쳤다. 현장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오전 내내 미팅이 몰려 밥 먹을 시간도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창업자는 “우리 기술에 관심을 보이면서 행사 후 따로 만나자는 미팅 약속만 10곳 이상 생겼다”고 했다.
‘지구를 구하자(Saving The Planet)’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선 지난 수년간 인기였던 메타버스·블록체인·게임 관련 기술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당장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푸드테크·농업테크와 같은 기술들이 빈자리를 꿰찼다. 데니스 반 아워크라우드 매니징파트너(전무급)는 “인류 생존과 직결된 기술들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며 “겉만 매력적인 거품 기술들에 질린 투자자들은 이제 진짜 도움되는 실용적 기술에 눈을 돌리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현장에선 인간 대신 자율 비행으로 농장에서 과일을 따주는 드론을 개발하는 ‘테벨’, 인공 단백질로 대체 우유를 만드는 ‘리밀크’, 초음파 사진을 AI가 분석해 심장 질환을 잡아내는 ‘AISAP’, 로봇 기술로 직립형 휠체어를 만드는 ‘업앤라이드’ 등 실용 테크 스타트업들이 제품을 전시하며 투자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전시장 정중앙에는 내년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 플라잉카 스타트업 ‘에어’의 2인승 플라잉카 ‘에어 원’ 주위로 투자자들이 몰려 있었다. 라니 플라우트 에어 CEO는 “에어택시를 염두에 둔 4인·6인승은 당장 돈이 안 된다”며 “개인 레저용 시장을 노린 소형 플라잉카 생산으로 전 세계에서 300대 넘게 선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이스라엘 창업가들, “창업가 네트워크가 우리 최대의 자산”
현장에서 만난 이스라엘 창업가들은 회사 규모와 무관하게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콩으로 대체연어를 만드는 ‘플랜티시’의 CEO 오펙 론씨는 “이스라엘에선 한 사람만 건너면 창업한 지인이 나온다”며 “초기 자금은 어떻게 모아야 할지, 각 단계에서 사람은 얼마나 뽑아야 하는지 등 정보를 얻기가 매우 쉬운 것”이라고 했다. 야니브 골드버그 요즈마 이노베이션 센터장은 “투자 유치가 막막한 창업가가 경쟁사에 전화해 투자자를 소개받는 경우도 많다”며 “서로 돕고 함께 잘되자는 문화가 오늘의 ‘창업 국가’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스타 창업가’가 많은 점도 강점이다. 이스라엘은 현재까지 100개가 넘는 기업이 뉴욕과 나스닥 등 미국 증시에 상장해 있다.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기업도 2022년 말 기준 85사에 달한다. 미국 증시에 상장한 기업이 한 곳(쿠팡)에 유니콘 기업 23곳이 있는 한국에 비해 ‘성공 비결’을 나눠줄 선배들이 많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오로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