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숙 수협은행장이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요즘 즐겨 읽는 조동화 시인의 시집 '나 하나 꽃 피어'를 들고 있다./고운호 기자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저 안에 태풍 몇 개/저 안에 천둥 몇 개/저 안에 벼락 몇 개/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주저앉고 싶을 때, 세상일이 힘들어 무릎에 힘이 빠질 때면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란 시(詩)를 암송한다. 고통 없이는 결실도 볼 수 없다는 진리를 마음에 새겼다. 그렇게 다시 걸어갈 힘을 얻었다. 수백번도 넘게 되풀이한 일이다.

수협에서의 인생 44년을 돌아보면 태풍도, 천둥도, 벼락도 참 많이 맞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열아홉 살에 수협에 들어와 ‘강양’으로 불리던 내가 수협 사상 첫 여성 은행장이 됐다. 짐작들 하시겠지만, 쉽지 않았다.

지난 2001년 수협 역사상 ‘첫 여성 지점장’이 됐다. 폐쇄 직전에 몰린 서울 오금동지점을 받았다. 이를 악물고 일했다. 주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객을 찾아나섰다. 잘 마시지 못하는 술과 씨름했다. 눈에 실핏줄이 터지기 일쑤였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다.

고객들에 대해 세세한 것까지 빼곡히 써넣고 관리하는 내 영업 노하우인 ‘경영 노트’ 쓰는 법을 직원들에게 알리고 함께 뛰었다. 열심히 살았다. 지점장 부임 후 10개월 만에 오금동지점을 전국 실적 1위 지점으로 만들어냈다. 그때 세운 ‘15분기 연속 1위’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신입 시절 선을 보러 갈 때도 ‘(금융) 규정집’을 끼고 다녔다. 전국 2등으로 대리 필기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도 여자인 나에게는 대출 업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폐기된 대출 서류로 독학한 뒤 지점장에게 “일을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대출 상담 창구에 앉을 수 있었다.

전국 1등 영업왕 지점장이 된 뒤에도 더 큰 꿈을 이루려 하니 “소매 금융만 해보지 않았느냐”는 꼬리표가 붙었다. 여성에게는 남성보다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던 시절이다. 서울 서초동지점장으로 갔다. 기업금융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한 걸음씩 내디디면서 강인한 여성 임원으로 거듭났다. 고비마다 붉은 대추를 떠올렸다. 우리는 모두 익어가는 대추 한 알이라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태풍과 천둥, 번개를 맞고 있을 것이다. 이겨내야 붉어지고 단단해진다. 저절로 붉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