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주인 없는 회사’로 꼽히는 은행계 금융지주의 최고경영자(CEO) 결정과 승계 시스템 구축 등에서 이사회가 선량한 관리자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방침을 금융 당국이 밝혔다.

금융감독원은 6일 이 같은 내용의 은행계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방안 등을 담은 올해 업무 계획을 발표했다. 최근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서 후보자 선정 기준 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은행계 금융지주 이사회와 연 1회 이상 면담하는 등 소통을 강화하고, 사외이사가 CEO 후보 결정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후보 추천 기준과 선정 투명성부터 높인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날 “(후보 선정 과정에서) 롱리스트(long list·1차 후보군)를 작성하는 기준이 뭔지, 이사들에게 실무진에서 충분한 자료를 제공했는지 등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후보를 추리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어떤 기준을 적용했는지 등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임 CEO 선임 절차가 전임자의 임기 만료가 가까워진 시점에 촉박하게 진행되면서 외부 명망가 등에 대한 추천을 헤드헌팅(인재 추천) 회사들에 일임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은행 이사회가 실질적 결정권 갖도록

금감원은 개별 은행계 금융지주 이사회와 연 1회 이상 면담을 통해 이사회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인 사외이사들이 현직 CEO의 영향력에 휩쓸리지 않도록 금감원이 돕겠다는 뜻이 숨어 있다.

또 은행지주가 사외이사들이 CEO 선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도록 하고, 차기 CEO 후보군에 대한 검증 체계 표준안 등을 만들어 사외이사들이 후보자의 자질을 따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금감원은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어 역할과 책임 등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사외이사들이 주요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주제별 간담회도 개최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금융사 벤치마킹

이 원장은 글로벌 금융사들의 CEO 육성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은행지주들의 승계 프로그램이 주먹구구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외압 논란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등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사들은 승계 절차를 현직 CEO 임기 만료를 2년 정도 앞두고 시작할 정도로 장기적으로 관리한다. 일종의 예비 CEO로 육성하면서 CEO가 갑자기 사임하는 비상사태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시티그룹은 2018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건전성 테스트에 탈락하자 임기가 1년 정도 남아있던 당시 비크람 판디트 CEO가 그해 10월 갑자기 사임했지만, 2년 전부터 이미 승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클 코뱃 후임 CEO가 기용되면서 리더십 공백이 발생하지 않았다. 시티그룹은 12명의 상시 후보군을 4~5년 동안 미래 CEO로서 육성해왔고, 현직 CEO 임기 만료 2년 전쯤 이 중에서 최종 후보군 3명을 선발해 관리했다. 최종 후보군에 포함된 인사들은 경험해보지 않은 업무 영역을 담당하면서, 이사회에 참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육성 과정을 거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명확한 후계자군이 양성되고 있으면 ‘관치’ 논란은 사라지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감독 당국 과잉 간섭 우려도

이 원장은 “금감원장직에 취임할 때부터 은행의 공적인 역할에 대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며 “대통령 말씀에 거의 공감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 바 있다.

이 원장은 은행권이 연간 수십조원대의 이자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배경에는 은행업 진입이 제한되면서 생기는 ‘과점 체제’의 영향이 있다며 이러한 수익을 사회와 나눌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일부 고위 임원 성과급이 최소 수억원 이상 된다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지난달에도 “은행이 수익의 3분의 1은 주주 환원, 3분의 1은 내부 임직원을 위해 쓰더라도 나머지는 금융 소비자를 위해 써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금감원이 은행 지주 이사회 운영을 직접 감독하고, 이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간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이사회와 소통하면서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는 것을 나쁘다고 볼 순 없다”면서도 “관치 금융이라는 말이 여전히 살아있는데, 이사회가 금융 당국의 눈치를 더 살피게 되는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