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지배 체계’를 굳힌 시진핑 정권 3기가 대외 강경 노선으로 일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24일 홍콩 증시가 폭락했다. 공산당 당 대회를 마치고 23일 출범한 시진핑 3기는 지도부 격인 상무위원 7명이 전원 ‘시자쥔(習家軍·시진핑의 측근 그룹)’으로 구성돼 있다. 개혁·개방파로 불린 리커창 총리와 왕양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권력 경쟁에서 탈락해 물러났고, 이에 따라 시장 친화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들어온 시 주석의 강경한 정책 노선이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홍콩항셍지수 급락, 위안화 약세

시 주석 3기 체제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주가로 나타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4일 홍콩 항셍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6.36% 하락한 1만5180.69로 마감했다. 장중에는 6.95%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들로 구성된 홍콩H지수는 7.3% 폭락했다. 1994년 해당 지수 출시 이후 역대 중국 공산당 당 대회 직후 하락률로는 가장 큰 낙폭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날 중국 본토의 상하이종합지수(-1.85%)도 약세를 보였다.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도 장중 한때 7.2552위안까지 상승, 위안화 가치가 200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블룸버그는 시진핑 3기 체제가 전원 시 주석의 충성파로만 구성되면서 ‘제로 코로나’를 위한 봉쇄령과 같은 강경 정책에 변화가 없으리란 점이 시장을 실망시켰다고 분석했다. 홍콩 킹스턴 증권의 리서치 담당 디키 웡도 파이낸셜타임스(FT)에 “홍콩 증시가 공포에 빠져 투매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시 주석은 이번 당 대회 개막 연설에서 ‘공동부유(共同富裕)’란 개념을 4차례 언급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내걸었던 선부론(先富論·일부가 먼저 부유해진 뒤 이를 확산시키는 것)으로 일군 경제 발전의 수혜를 모든 국민이 공유하자는 게 공동부유의 본질이라고 중국 당국은 설명하지만, 서방에선 의혹의 눈초리로 본다. 공동부유를 명분으로 내세워 중국 당국이 빅테크나 부동산 기업들에 반시장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을 놓고 사회주의 색채가 짙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중국 GDP 3.9% 증가했지만 목표치인 5.5% 달성은 요원

중국 국가통계국은 24일 3분기 경제성장률(전년 동기 대비)이 3.9%라고 발표했다. 블룸버그(3.3%)와 로이터(3.4%) 등 시장의 예상치를 넘어섰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인 5.5% 달성은 현실적으로 물 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에 대해 아시아개발은행은 3.3%, IMF(국제통화기금)는 3.2%, 세계은행은 2.8%로 각각 내다보고 있다. 중국 정부의 3분기 성장률 발표로 보더라도 올해 중국의 1∼3분기 누적 성장률은 3%에 그친다.

앞서 국가통계국은 지난 18일로 예정됐던 3분기 경제성장률 발표를 아무런 설명 없이 돌연 연기했다. 시장에서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결정하는 당 대회를 앞두고 악화된 지표 발표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3분기 경제성장률과 함께 공개된 9월 산업 생산은 작년 동월 대비 6.3% 증가했으나 소매 판매는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수출 증가율은 5.7%로 8월(7.1%)보다 부진했다.

◇홍콩 증시 급락에 국내 ELS도 손실 구간 진입

홍콩 증시가 하락하면서 홍콩 시장 지수와 연계된 국내 주가연계증권(ELS) 상품들의 손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ELS는 특정 주가 지수나 개별 종목 가격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조기·만기 상환으로 약속한 수익률이 보장되지만, 그 밑으로 떨어지면 원금까지 손실을 보는 금융상품이다.

이날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홍콩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포함한 ELS의 미상환 발행 잔액은 21조18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4.4% 늘었다. 미상환 발행 잔액이 증가했다는 것은 상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원금 손실 우려가 있는 ELS 상품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백두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오늘 홍콩 지수가 대폭 떨어지면서, 현재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삼고 있는 ELS 투자 금액의 55% 정도가 원금 손실 구간에 들어온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