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에서 2016년부터 피자 가게를 하고 있는 30대 김모씨는 코로나가 시작되고 매출이 줄면서 저축은행과 신용카드 대출까지 총동원해 빚으로 버텼지만, 작년 여름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임차료 등을 내기 위해 빌린 돈만 6000만원이었다. 김씨는 “가게 그만두고 대리운전과 배달 등으로 생활비를 벌어왔다”며 “대출은 언제 갚을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했다.

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지난 4월까지 이어진 코로나 방역으로 피해를 많이 본 자영업자의 대출이 960조원까지 불어난 가운데 금리가 급등하면서 부실한 자영업자 대출이 부채 폭탄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이후 원리금 상환을 미뤄온 자영업자 대출의 연착륙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유예 조치가 끝나는 9월 이후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부실 대출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코로나 직전인 2019년 말 684조원이었던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 3월말 961조원으로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이다.

◇자영업자 절반 “상환은커녕 빚 더 내야 할 판”

자영업자의 빚 부담은 대출 금리 급등으로 가중되고 있다. 본지가 하나금융경영연구소와 함께 자영업자 800명에게 설문한 ‘2분기 자영업자 길거리 경기 조사’ 결과, 85%가 대출 금리 상승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또 대출 금리가 오르는 동시에 물가가 급등하고 경기 침체 조짐까지 보이면서 자영업자의 절반에 가까운 45%가 “대출을 더 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설문에 답한 자영업자 중엔 물가와 대출 금리의 동반 상승으로 사업 자금이 바닥나 대출을 갚을 여력이 없다고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경기도에서 2008년부터 한식점을 하는 40대 여성 사장은 “음식 재료, 전기, 수도 등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라 매우 힘든데 대출 이자까지 올라 경영이 너무 어렵다.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했다. 한 식당 사장은 “자영업자는 대부분 신용 점수가 낮은 편이라 직장인보다 대출 한도는 낮고 이율은 너무 높다”면서 “빚 갚으려고 빚을 더 내는 ‘빚의 악순환’에 빠졌는데 이자, 최저임금, 물가가 다 뛰어올라서 막막하다”고 했다.

◇빚 상환 유예 내달 말 종료, 막막한 자영업자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 시행된 자영업자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가 9월 말 종료되는 것도 문제다. 상환이 유예된 채 쌓여 있는 자영업자 대출은 133조원 정도다. 정부는 이 대출의 연착륙을 위해 고금리를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거나, 일부는 탕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그동안 연체를 막아뒀던 탓에 이 대출 가운데 어느 정도가 상환 능력을 상실한 ‘못 갚을 돈’인지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명동의 폐업한 카페 자리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빚을 내 버티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늘면서 자영업자의 대출은 코로나 전보다 40% 많은 약 960조원까지 불어났다. /뉴스1

본지가 9개 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7개 은행 부행장이 “그동안 상환 유예된 자영업자 대출 중 최소 20%는 상환 불능 상태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 부행장은 “자영업자 통계를 보면 폐업이 크게 늘었는데 이와 비례해 연체나 부실 대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 위험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개선되던 경기 전망, 3분기 다시 고꾸라져

자영업자 길거리 경기 조사에 참여한 자영업자의 87%는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의 추가 연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코로나가 최악의 상황은 지났지만 영업이 완전히 정상화된 것은 아니고, 인플레이션과 소비 부진이 닥쳐 대출 상환 ‘체력’을 아직 회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서울에서 도매업을 하는 50대 사장은 “고환율·고물가로 수입 원가가 올라 도매 가격을 올렸더니 손님이 줄어버렸다”며 “대출 상환 시기가 닥치고 있는데 이 상태로는 이자 내기도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3년째 서울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는 30대 사장은 “사업 시작 후 늘어난 것은 빚뿐”이라며 “소비가 죽어서 가격을 못 올리는데 대출 상환을 어떻게 하느냐. 밤에 잠도 안 온다”고 했다.

조사에 참여한 자영업자들은 물가 급등, 금리 인상, 환율 상승 등 삼중고로 인해 경기 전망을 어둡게 보았다. 길거리 조사를 시작한 작년 3분기 이후 코로나 상황이 개선되면서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전망은 낙관적으로 바뀌었었는데, 2분기엔 비관이 크게 늘며 경기 심리가 악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향후 경기 전망을 묻는 질문에 ‘나빠질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55%로 절반을 넘었다. 지난 1분기(43%)보다 크게 늘었다. 정유탁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출 금리 급등,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비용 증가, 소비 악화, 정부의 대출 유예 종료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겹치면서 취약한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이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