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면 가족 아닌가요? 꼭 결혼해야 하고, 부모·자식만 가족이라는 생각, 이젠 낡은 것 같네요.”

서울 성북구에 사는 대학생 김세인(25)씨는 공무원인 남자 친구와 산다. 6년 차 커플로 3년 전 6평(보증금 1000만원·월세 50만원)과 10평(보증금 2000만원·월세 60만원) 원룸을 합쳤다. 지금은 15평(보증금 2000만원·월세 75만원) 투 룸에 산다.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했다. 매달 나가는 월세가 1인당 37만5000원으로 줄었다.

가족이 아니라 친구나 애인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가족’이라는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결혼과 혈연에 묶인 전통적인 가족의 경계선이 옅어지고, 함께 사는 사람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47만 가구는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같이 산다

통계청의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비친족 가구 구성원은 101만5100명이다. 8촌 이내 친족이 아닌 남남끼리 사는 5인 이하의 가구를 비친족 가구라고 한다. 이런 가구가 47만2660가구에 달한다. 지난해 전국 가구(약 2202만 가구)의 2% 정도다. 6인 이상이 사는 셰어하우스는 비친족 가구가 아닌 ‘집단 가구’로 부른다.

비친족 가구 및 가구원 수 추이

지난해 전국 2202만3000가구 가운데 친족 가구는 64.4%였다. 하지만 1년 전보다 5000가구(0.4%) 줄어들었다. 반면, 비친족 가구(전체 가구 중 2.2%)와 1인 가구(33.4%)는 늘고 있다. 비친족 가구는 1년 전보다 4만9000가구(11.6%) 늘었고, 1인 가구는 52만2000가구(7.9%) 증가했다.

1인 가구가 늘면서 비친족 가구가 늘어난 측면도 있다. 학업·취업·생활양식 변화 등으로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1인 가구가 주거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가족이 아닌 이들과 다시 집을 합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인 가구로 독립한 청년들이 비싼 주거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친구 집 월세살이, 공동 원룸 등 늘어

5급 사무관 김모(30)씨는 작년 2월 세종 청사로 출근하면서 세종시 도담동에 행시 동기와 방 3개짜리 25평(전세 3억원) 아파트를 얻었다. 김씨가 전세금을 냈고, 함께 사는 동기가 매달 40만원씩 김씨에게 낸다. 김씨는 “3년 전 고시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함께 봐왔던 친구라 이제는 정말 가족 같다”고 했다. 이렇게 사는 젊은 사무관들이 세종시에는 흔하다.

서울 성북구의 한 대학에 다니는 송모(25)씨는 2019년 3월부터 과 친구인 박모(25)씨와 9평 원룸(보증금 1000만원·월세 50만원)을 구해 살고 있다. 보증금·월세뿐 아니라 생활비 통장을 만들어 각자 매달 20만원씩 낸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친족 가구 증가는 청년층에 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청년들이 서로 협력해서 살면서 일시적으로 가족처럼 지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혼인·혈연·입양이 아닌 가족의 탄생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만 18∼69세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6명 이상(62.7%)은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 비혼·동거까지 확대하는 데 동의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 “혼인·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주거를 같이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에는 각각 87%, 82%가 동의했다. 비친족 가구의 증가를 예상한 것이다.

가족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4월 ‘제4차 건강가정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비혼·동거 가구, 위탁 가정, 서로 돌보며 생계를 함께하는 노인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가족 범위에 제한을 두는 민법을 개정하고, 건강가정기본법상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기본 단위’라는 가족 정의 조항도 삭제할 계획이다.

아직 정부 지원은 가족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득세 인적공제의 경우 호적상 배우자만 공제가 가능하다. 주택청약 특별공급 등도 신혼부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친족 가구 증가는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가족 개념 자체가 바뀌는 만큼 청년 세대뿐 아니라 전 세대를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