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20·30대 ‘한남’(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용어) 대부분이 대상자라 지지율 끌어모으려고 그러는 걸까요.” “코인 투기한 이대남(20대 남성), 왜 우리 돈으로 구제해 줘야 하죠.” “정부가 대출 이자 깎아주는 사람 중 여성이 얼마나 될까요.”

정부가 지난 14일 ‘금융부문 민생 안정 계획’을 통해 빚 갚기가 어려운 20·30대의 대출 원금 상환을 유예하고 이자를 감면한다고 발표한 후 여성 이용자가 대부분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정부 발표 후 20일까지 엿새 동안 100개 가까운 게시물과 5000개 넘는 댓글이 쏟아졌다. 정부가 가상 화폐 투자로 돈을 잃은 20·30대 남성을 구제해주는 것 아니냐는 비난 글이 대부분이다.

정부가 대출 상환을 하기 어려워진 20~34세의 재기를 돕는다며 이자 감면 등 구제책을 내놓자 도덕적 해이 논란이 남녀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소득이 불안정한 젊은 시절에 진 빚 때문에 평생을 신용불량 낙인이 찍혀 사는 것은 가혹하다”는 찬성론에 대해 “청년 재기를 앞세운 남성 코인 투자자 구제책”이라는 여성들의 반론이 커지면서 젠더(성별)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코인 빚투 대부분이 남성”

금융위원회는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인 청년에게 대출 이자를 30~50% 감면해주고 저리로 최장 3년 동안 원금 상환을 유예해주는 ‘청년층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민생 안정 대책에 포함했다. 금융위가 14일 대책을 발표할 때 “많은 청년이 저금리 환경에 저축 대신 돈을 빌려 주식, 가상 자산 등 위험 자산에 투자했다. 최근 금리 상승 여파로 상당수 자산 투자자가 경제·심리적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설명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앞서 서울회생법원이 이달 초 코인·주식 투자로 손실을 입은 이들의 빚을 대폭 감면해주기로 결정하자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 상태여서 논란이 더 커졌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개인회생 신청자 연령별 비율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18일 “빚투(빚내서 투자)족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달라”고 해명했지만 젠더 갈등은 식지 않고 있다. 청년 코인 투자자 가운데 남성이 2배 이상 많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작년 하반기 기준 실명 확인을 마친 가상 화폐 투자자(558만명)의 40%인 218만명이 20·30대 남성이다. 같은 세대 여성은 90만명으로 절반도 안 된다. 코인 투자는 거래세 및 배당에 대해 세금 등을 내는 주식과 달리 아무 세금도 내지 않는데, 굳이 구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주식 투자자의 경우도 남성이 62%로 여성보다 많다. 특히 2030세대 남성은 공격적인 투자 행태를 보여 투자 수익률이 낮은 경우가 많다. 투자 실패 가능성이 여성보다 높다는 뜻이다. 한 증권사 조사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20대 남성의 주식 투자 수익률은 -18%로 매우 낮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의 재기를 돕는다는 좋은 취지의 정책임에도, 금융 당국이 가상 화폐나 주식 투자 실패로 인한 피해를 도와준다고 하면서 갈등의 단초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청년만 도와주나? 중·장년층도 힘들다”

투자 실패로 인한 신용불량자 양산 등을 막으려고 했다 하더라도, 그 대상을 청년으로 한정한 데 대해선 다른 세대의 불만 또한 적지 않다.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는 이재원(52)씨는 “20·30대의 빚 문제가 심각하다지만, 소득이 적은 고령층도 힘들고 퇴직을 앞둔 50대도 어렵다”며 “왜 청년층만 지원 대상으로 찍어서 지원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대출을 갚지 못해 파산이나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이들 중에 20·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6.7%로 미미하다. 60대 이상이 44%로 가장 많고, 50대가 33%로 뒤를 잇는다. 장년층 이상의 ‘빚 고통’이 더 크다는 뜻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리한 투자로 신용 불량에 빠진 청년층을 선제적으로 구제해준다는 것은 정치적 결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