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부영태평빌딩에서 열린 '한국은행 창립 제72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 /뉴시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설 정도로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과 맞서야 하는 한국은행의 고민은 더 깊어지게 됐다. 우리나라는 물가 상승률이 미국 8.6%,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9국) 8.1% 등과 비교해 아직은 낮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차질 등 극심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요인들에 똑같이 노출돼 있기 때문에 물가가 쉽게 잡히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0일 “(기준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더 확산하면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며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할 방침을 밝혔다. 이 총재가 ‘인플레이션 파이터(전사)’로서 역할을 강조하면서 한국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처럼 한 번에 기준금리 0.5%포인트를 올리는 ‘빅스 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연준처럼 공격적으로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과 싸우기에 한국 경제의 여건이 좋지 않다. 우선 1900조원에 달할 정도로 급격하게 불어나 있는 가계부채가 큰 부담이다. 기준금리를 급격히 올릴 경우 가계의 원리금 상환액이 커져 연체가 늘고 금융으로 위험이 번질 우려도 있다. 한국 가계 대출의 77%는 시중금리가 오르면 대출 금리가 따라 오르는 변동금리 대출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1%포인트 올라갈 경우 대출자 1인당 이자 상환액이 연간 평균 64만원 늘어나는 등 가계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된다.

그렇다고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는데 한은이 가계부채 부담을 우려해 머뭇거릴 경우 미국 금리가 한국을 넘어서는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날 위험이 있다. 연준은 지난달에 이어 6, 7월 회의에서도 ‘빅 스텝(0.5%포인트 인상)’을 예고한 상태다. 한은 기준금리는 현재 연 1.75%인데, 연준이 두 번 ‘빅 스텝’을 하면 미국 기준금리는 1.75~2%가 된다. 한은은 6월에는 금리 회의가 없고, 7월에 열리는데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리면 미국과 기준금리가 같아진다. 한은도 7월에 빅 스텝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금리가 같거나 역전된다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 투자금들이 안전하면서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한국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으로 달러 가치가 올라가는 것도 한은에는 부담이다. 기준금리를 인상해 원화 가치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상승할 경우 수입품의 가격이 올라 소비자 물가를 더 높이게 된다. 한은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 오를 때마다 물가 상승률은 0.06%포인트 상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