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호 기자 글로벌 신냉전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새 정부 출범 후 경제 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주요 국책연구·전략기관장들이 7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한국 경제 안보의 현재 쟁점과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 대담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은호 전략물자관리원장,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주현 산업연구원장,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

자유무역으로 대표되는 세계화가 쇠퇴하면서 경제안보가 주요 문제로 부상했다. 2018년부터 4년째 이어진 미·중 경제 갈등은 최근 반도체 공급망 재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과 러시아간 대립도 격화됐다.

지정학적으로 사회주의·자유주의 체제 사이에 낀 한국으로서는 선택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의 미국 주도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참여 추진에 중국은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이를 인식한 새정부는 대통령실에 경제안보비서관직을 신설하는 등 대외 위험 요인에 대처하고 있다.

경제안보를 연구하는 대표 국책 연구·전략 기관 4곳의 기관장들을 한자리에 모아 해법을 들어봤다.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주현 산업연구원장, 손승우 한국지식재산연구원장, 이은호 전략물자관리원장이 7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열린 대담에 참석했다.

- 세계화 대신 ‘신냉전’이 최근 부상하고 있다.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보나?

손승우=중국 견제와 신냉전 체제는 장기화될 것이다. 1980년대 미국은 무역·재정 적자의 원인을 일본으로 보고, 엔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는 ‘플라자합의(1985년)와 일본 반도체에 100% 관세를 부과하는 ‘미일반도체협정(1986년)’을 체결했다. 일본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45%를 넘어설 때 제재가 시작됐는데, 현재 중국은 이미 70% 수준이다. 대립 관계는 향후 10년 이상 장기화될 것이다.

주현=미·중 간 전략 경쟁은 이제 시작 단계로 장기간 국제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경제안보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장기 대응 조직 체계를 모색해야 한다.

이은호=구체적으로 올해 미국·일본은 대(對)중 첨단기술 수출통제를 위한 신체제를 검토 중이다. 미국·EU(유럽연합)는 올해 말 장관급 회의 전에 어떤 국가들과 어느 분야에서 수출통제 협력체를 구성할지 결정한다. 미 상무부 장관은 반도체 중심의 수출통제를 조율할 예정이라고 했다. 수출통제 협력에 참여할 나라들로는 미국·EU·일본·네덜란드 등이 꼽힌다.

김흥종=높은 상호 의존 관계 속에서 대결이 일어나고 있어 ‘냉전’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미·중 관계를 ‘냉전’·'신냉전’으로 묘사한 적이 없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기본적으로 협력(Cooperation)·경쟁(Competition)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위해서는 대립(Confrontation)한다는 ‘3C’로 요약된다. 오히려 중국이 한국 정부의 IPEF 가입에 대해 “신냉전을 유도하지 마라”는 입장을 냈고, 미국에게도 “냉전적 사고를 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 복잡한 역학 관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김흥종=현 단계에서는 맹목적으로 특정국을 배제하기보다 국제 규범에 입각해 사안별로, 포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는 최대한 우호적인 통상 환경을 조성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다하고 산업 역량을 제고하면서 힘을 비축해야 한다.

이은호=한국은 글로벌 기술과 공급망 관리 논의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적극 참여해야 한다. 미국·EU는 양측 수출통제·투자심사 제도가 키를 맞춰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중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서다. 한국은 반도체 제조 기술이 유출될 수 있는 상황과 이를 막을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

- 새정부의 ‘안미경세(안보는 미국, 경제는 세계)’ 정책을 평가하면?

손승우=이전 정부 정책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었다. 안미경세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피해 기업이 나올 수 있다. 해외 의존도가 높은 전략 물자의 자국 생산을 늘리거나 원자재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일본이 대만 반도체사 TSMC에게 대규모 지원을 약속하고 구마모토현에 유치한 것과 같은 협력 전략도 요구된다.

김흥종=안보는 동맹국 미국과 협력하지만 경제통상 분야는 세계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과 협력은 지속하면서도 의존도를 줄이고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 IPEF 가입 추진 등 한국이 미국과 가까워짐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은?

주현=IPEF가 이제 협상 시작을 선언했고 어떤 성격을 갖고 운영될지 미지수다. 중국의 보복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섣부르다. 다수의 아시아국 등 14국이 참여를 밝혀 한국에게만 선제 보복하는 상황도 가정하기 어렵다.

김흥종=비슷한 이유로 중국 경제보복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2017년 사드 사태에서 중국은 한국에게 타격이 있지만 자신들에게 영향이 적은 분야를 선택했다. 중국 관광객 한국 여행 제한, 한류 콘텐츠 수입 금지, 화장품 등 소비재 수입규제 등이었다. 현재는 원자재·중간재 관련 제재를 예상할 수 있으나 이는 중국에도 손해다. 작년 대중국 수출품의 80%, 수입품의 64%가 중간재였다. 한국이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단순 최종재는 중국 피해 없이 한국에게 단기 타격을 줄 수는 있다.

손승우=한국이 IPEF에 가입하고 미국에 가까워질수록 중국의 보복 가능성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중간재 수출을 제한하면 2019년 일본의 수출 제재와 요소수 대란에서 봤듯 한국이 경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한국 국채를 내다 파는 금융 조치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제재로 중국 디지털 제품에 필수적인 한국 반도체 공급이 끊기고 한·미 동맹이 오히려 강화되는 등 ‘제 발등 찍기’가 될 수 있다.

-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에 대비책은?

김흥종=한·중 협력 내용들이 IPEF 협정에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임을 중국에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정치·경제가 분리돼 있지 않아 경제 논리만으로 설득하기 쉽지않다. 한국이 사수해야할 원칙(레드라인)을 정하고 약간의 비용은 감수해야 한다. IPEF 참여국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해 대안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주현=IPEF는 새로운 규범 질서를 만드는 출발점이다. 정부는 미국과 군사·기술의 포괄적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미국에게 한국이 중국과 지속적인 전략 대화 채널을 유지해야 함을 이해시켜야 한다. 중국을 향해서는 미국과의 협력 강화가 중국과의 단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 작년 중국발 요소수 대란 사태 같은 자원 무기화 극복 방안은?

김흥종=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IPEF 등 협력체를 통해 강한 공급망 연대가 이뤄지면,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국가의 의도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주현=정부·민간 간 협력관계도 구축돼야 한다. 정부는 경제안보 정책 강화 과정에서 민간의 생산·혁신이 제약 받는 것을 유의해야 하고, 기업들은 정부와 공급망 안보 등에서 적극 공동 대처해야 한다.

- 곡물자급률 하락에 수입 가격 급등으로 식량 안보도 위협 받고 있다.

김흥종=한국은 2019년 기준 중국·일본·멕시코·이집트·스페인·네덜란드에 이어 7번째로 곡물 수입이 많은 나라다. 21% 수준인 곡물자급률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사료용 곡물이 총 곡물 수입의 68%에 달해 곡물값 상승이 국내 축산업계에 연쇄적 영향을 미친다. 국내 생산 확대, 한국 기업을 통한 곡물 수입, 비축 물량 증가 등이 논의돼야 한다. 주요 곡물 수출국 정책 등 정보를 공유하고 곡물 수입 물류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20개국 이상이 곡물 수출을 금지한 바 있어 수입선 다변화가 요구된다. 감소 추세인 주요 곡물 농지 면적도 늘려야 한다.

- 미국이 자국 기업들의 대만산 반도체 의존도가 커지자 최근 자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 지원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김흥종=작년 6월 미 상원은 반도체 생산 역량 확충을 위해 향후 5년간 520억달러 지원 법안이 담긴 미국혁신경쟁법(USICA)을 초당적으로 통과시켰다. 세계 반도체 생산량 중 미국 내 생산 비중을 현 12%에서 2030년 3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비교 우위를 가진 한국 기업들은 적극 진출해 해외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한편, 미국 내 생산 시설이 갖춰지는 2~3년 후에도 한국이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주현=미국은 중국 정책에서 반도체를 핵심 전략 품목으로 인식하고 기술 유출 방지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여력이 너무 작아 이른바 ‘프렌드 쇼어링(우방국과 생산 네트워크 결성)’을 대안으로 보지만 대만이 중국의 정치·군사적 위협에 노출돼 있어 우려가 크다. 그래서 자국 내 생산을 늘리려 한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적 이해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한국의 독자적인 산업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 현재 경제안보 관련 부처 조직 현황은?

손승우=새정부는 평상시 총리실 산하 신흥안보위원회에, 위기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경제안보를 맡기는 구조다. 기재부·외교부·산자부 등에 경제안보 조직을 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강력한 집행력을 갖춘 지휘 라인 구축이 추가로 필요하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10월 신내각을 출범시키며 경제안보담당대신(장관급)과 각료회의인 경제안전보장추진회의를 신설했다. 중요 물자 공급망 강화, 비공개특허제도 신설 등 경제안보 전략의 법적 기반인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마련하고 총리가 직접 챙기고 있다.

- 한·미 통화스와프(맞교환) 체결 필요성과 가능성은?

김흥종=국내 외환 건전성은 전반적으로 양호하다. 경상흑자가 줄긴 하지만 여전히 1분기 151억달러를 기록했고, 외환보유액도 4500억달러를 보유 중이다. 당장 한·미 통화스와프가 필요하지 않지만 보험 성격으로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미국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은 나라는 캐나다·영국·EU·일본·스위스 등 금융선진국이다. 해당 통화가 세계적으로 사용되며 미국 금융사의 외화 자금 조달에 사용돼야 한다는 기준에 부합되는 나라들이다. 한국 원화는 이 조건에 미흡하다. 상설이 어려우면 3~5년 단위의 준상설 통화스와프를 차선책으로 고려할 만 하다. 반도체 기술 협력 등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주현=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 시 급격한 외화유출이 시스템 위기로 확산되는 것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은 달러 부족 등으로 인한 외환위기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세계 경제에서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등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정부는 대응책을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