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을 떠나게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고향 친구들과 소소하게 술자리를 가졌다. “올라가서 촌놈 티 내지 마라.” “알았다, 쌍도 촌놈아.” 경상도 특유의 딱딱거림으로 축하와 감사를 갈음하는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실 고향을 떠나기 싫었다. 익숙하고 편안한 집, 부모님과 따뜻한 집밥, 고락을 함께 한 친구들 두고, 낯선 이 바글바글한 도시로 향하는 게 어찌 탐탁하리오. 여행용 가방을 둘러메고 버스에 오르는 동안 설움이 복받쳤다. 왜 우리는 고향을 등져야 하는가.
지방 어른들은 많이들 오인하신다. 서울이 좋아서 가는 것 아니냐. 시설 좋고 놀기 편해서 떠나는 거 아니냐. 아니다. 문화와 시설의 격차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한창 일해야 할 청년 대다수에게 지방은 전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우선 노동 순환이 안 된다. 양질의 직업교육을 통해 직장에 진입, 직무 능력을 차곡차곡 쌓아 경력으로 만들고, 임금과 대우가 지속해서 개선되며 삶이 나아져야 하는데 이 고리가 끊어져 있다. 하여 대다수 지방 노동자의 월급은 사실상 최저임금 연동제다. 공장에서 용접하며, 지게차 몰고, 복잡한 공작 기계도 다루며, 뻗은 두꺼비집을 착착 고치는 숙련공의 임금도 최저에서 고작 이삼십만 원 정도 더 받는 수준. 효율성을 앞세운 시장 논리 앞에 경력은 무의미해지고 세월과 동음이의어가 된다.
직업 선택의 자유도 없다. 게임을 만드는 게 소원이었던 친구. 언론인을 꿈꾸었던 동생과 조향사가 되고 싶었던 형님은 일찌감치 서울로 떠났다. 떠날 수밖에 없었다. 창원엔 그들이 바라는 직장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그나마 메리트가 되어야 할 정주 비용조차 서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싸다. 서울의 촘촘한 공공 교통망은 중심부터 땅값이 싼 외곽지까지 연결되어 있는 반면. 지방은 어디 살든 출퇴근하려면 자가용이 반필수라 결국 유지 비용을 더 물기 십상이다. 기업 문화는 또 어떠한가. 지방에서 으레 듣곤 하는 질문 “결혼 안 하나” 속엔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없다시피 했던 시대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가장의 외벌이만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가능했던 기성세대는, 자신 하나 건사하기 힘든 청년층을 이해하지 못한 채 후진 기업 문화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정부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지방에 쏟아붓는 돈 대부분은 일정 수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주판알 튕겨보니 적자가 뻔한 곳에 투자하기 망설여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방 청년에게 상경이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과정이 되어가는 지금. 차기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 간 최소한의 형평을 맞춰주었으면 한다. 여기서 제시한 ‘최소한’은 공공 직업 교육 확대와 지역 특화 일자리의 창출. 즉 먹고사는 문제라도 우선 해결 해달란 뜻이다. 제조업에 의존해왔던 지방의 산업은 근시일 내에 실직자를 쏟아낼 가능성이 짙다. 창원만 하더라도 이미 이전 공장 터에 스마트 팩토리가 들어서는 추세다. 허나 사양산업에서 벗어나 대세 업종을 따라가기엔 정부 지원이 너무도 미흡하다. 내일배움카드가 대표하는 현 공공 일자리 교육은 질이 높지 않고 기간마저 짧다. 소멸 위기의 지방 대학을 아예 직업 교육소로 탈바꿈시켜, 양질 교육을 현장에 투입될 수준까지 생계 걱정 없이 충분한 기간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지역 특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을 전폭 지원하길 바란다. 지역 상생형 일자리,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는 노동 순환성, 복지와 적정 임금 및 노동시간이 잘 조화된 모델이다. 하지만 이조차 결국 대기업에 의존한 산업 구조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당연하지만 대기업은 지방으로 내려오길 꺼린다. 결국 제2, 3의 광주형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창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지역 청년들이 먹고살 길을 제대로 터주지 않으면 지방은 금세 역사책에만 존재하는 지명이 될지도 모른다. 용접기를 내려놓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시골 촌뜨기가 차기 대통령께 부탁드린다. 저도 서울 올라가기 싫습니다. 그러니 부디 지방에 제대로 된 일자리 좀 만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