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무사 자격시험 2차 필기시험 한 과목에서 응시자의 10명 중 8명이 최저 점수를 밑도는 과락(科落)으로 처리됐다. 이에 시험 주관 기관이 “과목별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시인했다. 그런데 이 과목은 국세청 직원 등 세무 공무원 경력자에게는 면제된다. 이런 과목의 난이도가 예년보다 지나치게 어렵게 출제되면서 이번 세무사 시험 응시생들 사이에선 “세무공무원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의도적 난이도 조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제출받은 ‘제58회 세무사 2차 시험 공정성 논란 관련 보고’에 따르면, 올해 9월 실시된 세무사 2차 시험(서술식) ‘세법학 1부’ 과목 응시자 3962명 가운데, 82.1%인 3254명이 100점 만점에 40점을 밑돌아 과락 처리됐다. ‘회계학 1부’와 ‘회계학 2부’, ‘세법학 1부’, ‘세법학 2부’ 등 4과목 평균 60점을 넘으면 합격인데, 한 과목이라도 40점 밑이면 탈락이다.
세법학 1부의 과락률은 회계학 1부(14.6%)와 회계학 2부(45.6%), 세법학 2부(44.4%) 등 다른 과목을 크게 웃돌았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 저당권이 설정된 재산 평가의 특례와 특정 사례에 대한 계산 과정, 법정 결정을 묻는 4번 문항(배점 20점)이 특히 어려웠다는 게 수험생들 전언이다. 이 과목 응시자 3962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025명(51.1%)이 이 문제에서 0점을 받았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는 이유는 728명에 달하는 세무 공무원 경력자들은 이 과목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세청 경력이 10년 이상이면서 5급 사무관 이상 재직 경력이 5년 이상인 세무 공무원은 세법학 1부와 2부가 면제된다. 회계학 1부와 회계학 2부 성적만을 평균해 60점이 넘으면 합격 처리된다. 세무 공무원 경력자가 보지 않은 시험은 과락률이 80%를 웃돌 정도로 역대급 난이도로 출제된 반면, 세무 공무원들과 다른 수험생이 모두 보는 과목 가운데 ‘회계학 1부’는 과락률이 14.6%에 불과했다. 세법학 1부의 올해 과락률은 작년(30.6%)이 2.7배다. 회계학 1부의 올해 과락률이 작년(51.4%)에 비해 36.8%포인트 하락했다.
‘세무 공무원들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의도적인 난이도 조작 아니냐’는 수험생 일각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산업인력공단은 보고서에서 “세무사 시험에 국세청이 관여하는 바가 없고, 출제 위원은 기존의 풀(pool) 내에서 무작위로 선정해 공단 등 제3자의 개입이 불가능한 구조”라며 부인했다.
다만 산업인력공단은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인정하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문제의 세법학 1부는 배점이 각각 6점, 10점, 4점인 3개의 세부 문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최고점을 받거나 0점 처리되는 구조다. 산업인력공단은 내년부터는 6점 만점에 3점 등 부분 점수를 줄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또 채점 과정에서 0점자나 과락자가 대거 발생할 경우 난이도 적정성을 다시 검토하는 ‘특별 프로세스’도 도입할 예정이다. 김 의원은 “불공정한 시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개선안이 필요하다”면서 “올해 시험 특혜 의혹은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밝혀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