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세계경제의 최대 화두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통화 긴축이다. 2019년 12월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자, 중앙은행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푼 막대한 자금을 경제 정상화에 맞춰 회수하는 작업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이달부터 금리 인상에 앞서, 국공채 매입 물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러시아, 브라질, 헝가리, 체코는 올 들어 이미 여러 차례 기준금리를 올렸다. 노르웨이와 뉴질랜드는 집값 폭등세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연준이 돈을 줄이면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세계 각국에 투자한 자산 비중을 축소 재조정하는 작업을 한다. 이 흐름 속에서 빚덩이 한국 경제도 재무 건전성 심판대에 오를 전망이다.

돈줄 줄이기 시작한 미국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코로나 사태 발생 직후인 2020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5%포인트나 전격 인하, 현재의 0.00~0.25%로 낮췄다. 또 국공채를 매달 1200억달러씩 사들이며 돈을 풀었다. 그 덕택에 코로나 사태의 충격은 줄였으나, 돈이 워낙 많이 풀려 물가가 뛰기 시작했다. 연준은 올해 미국 소비자물가가 연간 4.2%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물가 관리 목표치(2%)의 2배가 넘는다.

그래픽=김성규

물가가 상승하면 돈줄을 줄여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가장 큰 임무이다. 이에 따라 연준은 국공채 매입량을 11월부터 매달 150억달러씩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지난 11월 3일 발표했다. 8개월 뒤인 내년 6월에 채권 매입 방식의 통화 확대 조치가 종료되면 고용 상황을 봐가며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내년에 물가 상승 속도가 빠르면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 월스트리트는 금리 인상이 내년 하반기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금리 인상은 과열된 경기를 냉각시키고 주택 가격의 거품을 빼는 역할을 한다.

금리 인상 서두르는 중앙은행들

미국이 ‘돈줄 줄이기’ 신호탄을 쏘기 훨씬 전부터 신흥국과 일부 선진국들은 이미 통화 확대 기조를 축소해왔다. 반도체, 자동차, 식품 등이 공급 부족 상태인 데다, 천연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가 뛰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러시아·헝가리는 각각 올 들어 6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렸다. 또 멕시코·페루·체코는 4번씩 인상했다. 칠레·폴란드·콜롬비아도 금리 인상에 동참했다.

금리 인상은 신흥국가만의 현상이 아니다. 선진국 그룹에서도 아이슬란드가 5월 이후 3차례나 기준금리를 올렸으며, 노르웨이(9월)와 뉴질랜드(10월)가 뒤를 따랐다. 한국도 지난 8월에 금리를 0.5%에서 0.75%로 15개월 만에 인상한 데 이어, 이달에 한 차례 더 올릴 전망이다. 캐나다·호주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 전 단계인 국채 매입을 축소하거나 아예 중단했다.

한국은행 오형석 통화신용연구팀장은 “올해 초 경기가 회복되고 물가 상승 압력이 증대되자 신흥시장 국가들이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 선진국들도 금융 완화 기조를 축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심사 받는 빚덩이 한국 경제

미국이 달러 정책 대전환을 선언하면서 한국 경제도 도전을 받게 됐다. ‘달러 패권’을 가진 미국이 자금줄을 죄면 국제 금융 시장의 자금들이 선진국으로 대이동을 하기 때문이다. 시티그룹,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브리지워터 등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들은 각 나라의 경제 상황과 중앙은행 금리 인상 속도를 감안해 자금의 회수량을 결정한다. 월스트리트 전문가는 “빚이 많아 대출·투자 자금의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되는 나라에서 가장 먼저 돈을 뺀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리 인상기에 빚 많은 신흥국의 국가 부도가 잦은 이유이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5년 뒤인 2026년 한국의 국가 채무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66.7%를 기록, 올해 말(51.3%)보다 15.4%포인트 오를 전망이다. 국가 채무 증가 속도가 주요 35국 가운데 1위이다.

고려대 김진일 교수는 “한국은 최근 수년간 국가와 가계 부문의 부채가 급증한 상황”이라며 “무디스와 S&P 같은 국제 신용평가회사들과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한국 정부, 금융회사, 기업의 부채 규모가 감당할 만한 수준인지 냉정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리 빠르게 오를 가능성

해외 자본 이탈을 막으려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 인센티브(유인)를 제공한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게다가 최근 급증한 주택 가격도 한국의 금리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 전월세 가격만 소비자 물가에 반영하고 있지만, 미국, EU(유럽연합), 뉴질랜드, 호주 등의 사례를 따라 주택 소유자의 자가 주거비도 반영할 경우 소비자 물가가 지금보다 더 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합적 요인들 때문에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시기와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금리가 오르면 ‘영끌 대출’로 집과 주식을 산 2030세대의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하고, 주가가 하락 압박을 받는다. 빚덩이 한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글로벌 핫머니(투기자본)의 공격 목표가 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걱정한다.

[인터뷰: 김진일 고려대 교수]

“대선 후보들, 국가 부채 늘리는 공약 매우 신중해야”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3일(현지 시각) 미국 연준의 국공채 매입 축소 조치는 글로벌 통화정책의 대전환을 의미한다”며 “빚 많은 우리나라에 충격이 올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국가별로 상환 능력을 감안해 돈을 회수할 것”이라며 “한국에서 돈을 얼마나 빼내는지에 따라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 위기 때처럼 고통을 겪을 수도 있고,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처럼 잘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 연준 본부에서 9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고,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1년에 2~3개월 정도 연준 본부에 머물며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김 교수는 연준의 국공채 매입 축소 조치를 “환자가 나아져서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보낸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준은 향후 8개월 정도에 걸쳐 국공채 매입을 단계적으로 종료한 뒤 내년 후반부터 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려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용과 물가 상황에 따라 금리 인상을 앞당길 수도 늦출 수도 있지만, 앞당길 경우 세계경제에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주택시장 거품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처럼 터지거나 암호화폐가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경우 연준의 통화정책이 바뀔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미국이 통화 긴축에 들어가면 한국의 국채와 주식을 사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한국의 국가와 가계, 기업의 부채 상황에 대한 재평가에 들어갈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정부가 외화 유동성과 국내외 부채를 잘 관리해 국제금융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처럼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글로벌 자금 흐름이 요동치는 시기에 한국 대선이 진행되기 때문에 대선 후보들은 공약의 편익과 비용을 잘 분석해 정부나 가계의 부채 규모에 영향을 주는 공약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외환 위기 당시인 1997년 대선을 열흘 앞둔 시점에 김대중 국민회의 대선 후보는 IMF(국제통화기금)와의 재협상론을 들고 나왔다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국채 가격이 폭락하자,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와 함께 IMF 합의 준수 각서에 서명했던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