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화폐 과세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면, 연간 250만원이 넘는 가상 화폐 양도 차익에 대해 22% 세율로 소득세를 내야 한다. 가상 화폐 투자자들은 내년 차익에 대해 2023년 5월 소득세 신고·납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두 달 뒤 법이 시행되는데 양도 차익 산정 방식 등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6일 국정감사 답변에서 “2년 전부터 준비해 온 만큼 내년 과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가상 화폐 거래소 등에서는 “과세 관련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정부는 ‘예정대로 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준비가 덜 됐으니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과세를 1~2년 늦추는 여야 의원들의 법안이 4건이나 발의된 상태다. 최대 1300만명(4대 거래소 등록 계좌수 기준, 중복 포함)으로 추산되는 국내 가상 화폐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피 못 잡는 양도 차익 계산법
가장 큰 문제는 양도 차익을 어떻게 계산할 것이냐다. 가상 화폐는 거래소 간 이동이 빈번하고, 해외 거래소를 통해 유입되는 경우도 많은데 현재 시스템상으로는 거래소가 고객의 취득 원가를 알기 어렵다. 직접 채굴한 가상 화폐는 취득가를 얼마로 볼 것인지도 문제다.
당장 내년 5월부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과세 자료를 국세청에 제출해야 한다. 한 거래소에서 매수부터 매도까지 한 경우는 별 문제가 없지만, 국내외 다른 거래소에서 유입된 가상 화폐가 매도된 경우 거래소가 최초 취득 원가를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생긴다. 해외 거래소에 고객 정보를 요구할 권한이 없고, 국내 거래소끼리도 개인정보보호법상 고객의 취득 원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입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 국세청은 과세 시행 직전인 2021년 12월 31일 자정 기준 국내 4대 가상 화폐 거래소 평균 시가를 취득가로 간주해 양도 차익을 정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예컨대 2000만원에 국내 거래소에서 산 가상 화폐를 4000만원에 판 경우 구입가가 입증되니 양도차익은 2000만원이고, 250만원을 제외한 1750만원의 22%인 385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반면 해외 거래소에서 몇 년 전 2000만원에 산 가상 화폐를 내년에 4000만원에 팔았다면, 올해 12월 31일 국내 거래소 평균 시가(3000만원)와 최초 구입가(2000만원) 중 유리한 금액(3000만원)을 취득가로 신고할 수 있다. 이 경우 차익은 1000만원이 되고 250만원을 공제한 750만원의 22%(165만원)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내년에 취득한 가상화폐의 경우 투자자가 최초 취득가를 입증하지 못하면 과도한 세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 지난달 국세청은 가상화폐 거래소 28곳을 대상으로 한 과세 컨설팅에서 고객의 취득가액을 증명할 수 없는 자산에 대해서는 취득가를 0원으로 산정해 제출하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투자자가 실제 취득 가액을 입증하지 않으면 매도 금액 전부가 양도 차익으로 간주돼 거액의 세금을 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세금 폭탄을 피하려면 투자자가 직접 해외 거래소에서 거래 내역 공문 등을 받아서 제출하거나, 계좌이체 내역 등을 통해 취득가를 입증해야 한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너무 과격한 발상”이라며 “납세자에게 너무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방침이 알려지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국내 거래소를 이용 않겠다”며 당국의 추적이 어려운 해외 거래소나 전자지갑(가상화폐용 지갑)으로 코인을 옮기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 “과도한 우려”
정부는 과도한 우려라는 입장이다. 바이낸스나 코인베이스 등 해외 거래소 사이트에서 투자자 본인이 손쉽게 거래내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인터넷 화면을 캡쳐한 것만으로도 과세 당국에 최초 취득원가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접 채굴한 가상화폐는 채굴 기간 중 전기세 납부 내역을 합산해 취득가액을 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의도적으로 문제점을 부각시켜 과세 시기를 늦추려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세 도입으로 거래가 위축되면 거래소의 수수료 수입이 감소할 수 있다. 국내 빅4 거래소들은 원화 거래시 0.05~0.25%의 수수료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한 대형 거래소의 경우 코인 광풍이 일었던 지난 4월 하루에만 100억원이 넘는 수수료를 벌었다는 얘기도 있다.
◇여야 정치권 “과세 유예해야”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 원장인 노웅래 의원은 3일 가상 자산 과세에 관한 토론회를 개최한다. 오는 11일에는 같은 주제로 김영진(민주당) 의원과 유경준(국민의힘) 의원이 공동 토론회를 연다. 20·30대가 주요 투자자인 가상 화폐 과세 이슈는 내년 대선에서 젊은 유권자 표심과도 직결되다 보니 여야를 막론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회에 계류된 가상 자산 과세 유예 법안은 정기국회 조세소위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가상 화폐 과세법안(소득세법 개정안)은 작년 12월 통과됐지만, 올해 거래소들은 9월까지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가상 자산 거래소 신고 요건을 맞추느라 급급했다. 이에 국세청도 지난 7월에야 처음 주요 거래소를 대상으로 과세 실무 컨설팅을 열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현장의 애로 사항을 전해듣고 있다.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