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탄 포자르 크레디트스위스 투자전략가. 그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금융위기 때와 달리 테이퍼링 과정에 연준이 은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테이퍼링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아마 올해 말쯤에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달리 은행이라는 막강한 지원군이 있기 때문입니다.”

졸탄 포자르 크레디트스위스 투자전략가는 최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연준은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함께 테이퍼링 작전을 수행할 전망”이라며 “약간의 덜컹거림은 불가피하나 시장이 테이퍼링을 과도하게 두려워하지는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포자르는 월가(街)의 가장 주목받는 시장 분석가 중 한 명이다. 재무부와 뉴욕 연방준비은행 등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통찰력 있는 분석 보고서(‘글로벌 머니 디스패치’)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의 보고서를 ‘포괄적인 시각과 탁월한 분석을 갖춘 월가의 필독서’라고 표현한다.

코로나 경제 충격 방어를 위한 주요국의 막대한 돈 풀기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발작(tantrum)’이라고까지 불렸던 글로벌 금융 위기 끝 무렵의 테이퍼링 충격이 또 닥치진 않을까. 포자르는 “지나친 공포는 필요하지 않다”면서도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연준이 노련하게 행동한다면 말입니다.”

-2013년 ‘테이퍼링 발작’ 때의 경험 때문인지,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이가 많다.

“금융 위기와 코로나 충격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모두 있다. 연준이 제로금리·양적완화 등 똑같은 도구를 동원해 대응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차이점은 민간 은행의 힘이 그때보다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금융 위기 때는 (자신들이 부실한 탓에) 힘을 못 쓰던 은행이 지금은 연준을 도와서 어려운 일을 처리해줄 지원군이 되었다.”

-테이퍼링 충격을 은행이 어떻게 흡수하나.

“테이퍼링이란 연준이 그동안 사들이던 미 국채 등을 전보다 덜 산다는 뜻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이미 막대한 경기부양책을 예고했기 때문에 미 국채 발행 물량은 앞으로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큰데, 연준이 국채를 사주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국채 금리가 급등(국채 가격 급락)하면서 시장이 공포에 휩싸일 수 있다. 이게 ‘발작’이다. 그런데 연준이 국채를 덜 사는 만큼 누군가가 국채를 더 사주면 어떨까. 시장의 충격은 잦아들 것이다. 이 ‘누군가’의 역할을 은행이 해줄 수 있다. 연준 관계자들은 최근 은행의 건전성 규제를 연말쯤 완화해줄 예정이라는 식의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달리 말하면 테이퍼링 시점에 맞춰 은행이 국채를 더 살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얘기다.”

연준은 은행들이 국채를 포함한 위험 자산을 살 때 그만큼 자기 자본을 더 쌓도록 한 SLR(보완적 레버리지 비율) 규제를 코로나 이후 일시적으로 완화했다가 지난 3월 다시 본래대로 되돌렸다. 포자르는 연준이 테이퍼링 발표와 동시에 이 규제를 다시 풀어 은행이 국채를 더 많이 사도록 길을 열어주리라고 전망했다.

-연준의 테이퍼링 일정은 어떻게 진행될까.

“연말쯤 테이퍼링을 시작하리라는 전망이 시장에 많다. 잭슨홀 회의(세계 중앙은행장 회의, 8월 26~28일) 때 연준이 테이퍼링과 관련한 발표를 무엇이라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첫날 테이퍼링 발표를 하고 다음 날쯤 앞서 말한 은행 건전성 규제 완화 방침을 발표하는 것이 최선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고 본다.”

-코로나는 경제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각국 정부는 코로나 경제 충격 방어를 위해 아주 너그럽게 지원금을 살포해 왔다. 돈이 모자라면 원래는 대출을 받았을 사람들이, 어느새 정부 돈을 받아서 쓰는 것에 익숙해졌다. 돈이 지갑에 마구 꽂히는 식인데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겠나. 그래서 나는 이런 ‘퍼주기’를 줄이기가 정치적으로 매우 힘들 것 같다고 본다.”

-인플레이션이 닥칠지 모른다는 우려도 큰데.

“높은 물가상승률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나는 요즘 식당에 가서 외식도 하고 싶지만, 여전히 문 닫은 식당이 많다. 동유럽 등에서 일하러 오던 종업원들이 아직 미국에 입국하기 어려워 일할 사람을 못 구해서다.(구인난이 심해지면 인건비가 올라가고 물가가 상승한다.) 코로나가 진정되면 이런 문제가 해소되고 물가도 조만간 정상을 찾아갈 것이다.”

◇졸탄 포자르는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투자 전략가로 미국 뉴욕에서 일하고 있다. 헝가리 출신으로 헝가리 페치대 졸업 후 한국 KDI(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이후 미 재무부에서 근무하다가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8년 8월 뉴욕 연방준비은행으로 옮겨 양적완화 정책 실무를 맡았다. 그가 매주 약 2회씩 발표하는 시장 분석 보고서 ‘글로벌 머니 디스패치’는 투자 전문가와 정책 결정자들이 챙겨 읽는 필독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