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일본 도쿄의 한 증시 전광판 모습. 12일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고 발표된 후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타격을 입었다. /AP 연합뉴스

미국발(發) 인플레이션 공포가 지구를 한 바퀴 돌며 글로벌 증시를 강타했다. 12일(현지 시각)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시장 예상보다 훨씬 높은 4%대로 나오자 미국을 시작으로 13일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일제히 급락했다. 소비자물가의 깜짝 상승은 미국의 빠른 코로나 백신 접종, 그리고 이에 따른 강한 경기 반등 기대감이 이끌어냈다. 경제 회복 자체는 나쁠 것이 없지만, 인플레이션이 궤도에 오르면 미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예정(2024년 이후)보다 앞당겨 인상할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 초저금리’의 힘으로 많이 올랐던 증시가 충격을 받는 것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시장 충격은 한국도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따라가야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이날 낸 보고서에서 “이번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조만간 발표될 4월 개인소비지출도 큰 폭의 오름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래픽=김성규

◇“코로나 타격이 정상화하는 과정”

미국발 물가 쇼크로 인플레이션 논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전문가 및 정부 당국자 사이에선 “앞으로 한동안 이어질 인플레이션의 신호탄”이라는 의견과 “코로나 시국을 벗어나는 시점에 발생하는 일시적 ‘착시’”란 견해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12일 보고서에서 “4월 물가 상승률 내역을 보면 추세적인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주거 비용 등의 상승세는 오히려 둔화했다”며 “물가는 숙박·항공 운임·중고차 등 팬데믹에 큰 타격을 받은 항목 위주로 올랐기 때문에 연준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물가를 항목별로 보면 에너지(25.1%), 교통·운송(14.8%) 등 지난해 이맘때쯤 코로나 영향으로 고꾸라졌던 부문들이 급등세를 보였다. 키움증권 김유미 연구원은 “4월 미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코로나 충격으로 하락했던 가격이 원래대로 되돌아가며 크게 오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물가 과열을 우려할 때는 아직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13일 거시경제·금융 점검회의를 열고 “미국의 물가 상승에 과도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지난달 미국의 높은 물가 상승률은 공급 부족, 미뤄둔 수요 등 경기 회복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시적 요인 및 기저 효과로 인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 공포, 글로벌 증시 급락

시장은 일단 ‘공포’로 반응하고 있다. 12일 뉴욕 증시 개장 전 발표된 4월 미국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 13년 만에 최고치로, 시장 전망치(3.6%)를 큰 폭으로 뛰어넘었다. 전문가들도 예상 못 했던 강한 물가 반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쇼크’로 전날부터 하락했던 미 증시는 이날 다시 큰 폭으로 내렸다. 우량주 위주인 다우평균은 -2.0% 하락했고 기술주가 많은 나스닥지수는 2.7% 급락했다.

다음 날 열린 아시아 증시도 충격을 피해가지 못했다. 13일 한국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이틀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며 각각 1.3%, 1.6% 떨어졌다. 일본 닛케이평균은 2.5% 급락했다. 대만 자취안지수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의 실적 악화와 코로나 확산 조짐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며 전날 4.1% 폭락한 데 이어 이날 다시 1.5% 하락했다. 한국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 1.5% 하락한 데 이어 다시 1.9%가 내려가 7만85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 종가가 8만원 아래로 내려간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번지며 한동안 잠잠했던 미국 국채 금리도 급등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코로나 이후 연 0.5%까지 하락했다가 백신 접종이 시작되며 1.7%까지 오른 후 최근 다시 진정되는 흐름이었다. 하지만 4월 미 물가 상승률이 발표되자 0.08%포인트 치솟으며 연 1.7%까지 상승했다. 미 국채 금리 상승은 글로벌 시장 금리를 연쇄적으로 끌어올리는 요인이어서, 초저금리의 ‘맛’에 빠진 글로벌 증시엔 악재다. 대신증권 이경민 연구원은 “미국의 높은 물가 상승률은 금융 위기 이후 발생한 ‘긴축 악몽’을 되살리며 글로벌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경제의 기초 체력은 회복되는 중이고 경제는 강해지겠지만 물가·금리발 충격파가 일단 시장을 때린 이상 안정을 찾아가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