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Jeep)의 대표적인 SUV ‘랭글러 사하라<사진>’는 1990년대 현대차 ‘갤로퍼’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그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차다. 지난달 설 연휴 랭글러 사하라로 서울·경기 일대 약 200㎞를 달려봤다. 험로 주행에 특화된 랭글러 루비콘이나 스포츠S와 달리 외관 색상이 비교적 세련되고, 소음 발생이 적은 타이어를 장착해 ‘도심 주행용’으로 불리는 모델이다.
차체 크기가 예상보다 우람하지는 않았다. 길이 4780㎜, 폭 1895㎜로 현대차 싼타페나 기아 쏘렌토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높이(1855㎜)는 이들 차량보다 10~15㎝가량 더 높아서 ‘차에 올라 탄다’는 느낌이 분명했다. 높고 넓은 시야 확보를 중시하는 SUV 운전자라면 만족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비는 L(리터)당 8㎞, 최고 출력은 284마력이며 가격은 8710만원부터다.
실내 디자인은 투박한 편이지만, 편의 기능은 부족하지 않았다. 인포테인먼트와 공조 시스템 모두 물리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어 직관적이었고, 운전석 앞에는 요즘 보기 드문 아날로그 계기판도 있었다. 역대 랭글러 가운데 가장 큰 12.3인치의 터치 스크린은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모두 무선으로 지원했다. 앞좌석에는 이른바 ‘엉따’로 불리는 열선 시트와 열선 스티어링휠을 기본으로 갖췄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튀어나가듯 나가는 거친 느낌이 나름 매력적이다. 최신 SUV처럼 매끄럽게 속도가 붙거나 감속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감각이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때 차가 앞으로 가지 않게 잡아주는 ‘오토 홀드’(브레이크 고정) 기능도 없다. 뚜렷한 불편함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랭글러의 개성으로 느껴졌다. 요즘 SUV 신차들이 점점 잃어가고 있는 아날로그 감성과 낭만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이 차의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