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기차 시장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 점유율이 지난해 34%까지 치솟았다. 같은 기간 한국산 전기차는 대미 수출이 87% 급감했다. 안방에선 중국산에 치이고, 밖에선 관세 장벽에 막혀 입지가 줄어든 것이다. 이런 구조가 고착될 경우 현대차·기아뿐 아니라 배터리와 소재·부품으로 이어지는 국내 전기차 생태계의 미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신규 등록된 전기차 22만177대 가운데 7만4728대(34%)가 중국산이었다. 2021년 1%에 불과했던 중국산 전기차 비중이 4년 만에 30%대를 돌파한 것이다. 중국산 전기차의 전년 대비 판매 증가율은 2024년과 지난해 각각 72%, 112%였다.
◇입지 좁아진 국산 K전기차
중국산 전기차는 브랜드와 무관하게 중국에서 생산된 물량이 대량으로 유입되고 있다. 중국산 테슬라 모델3와 모델Y가 대표적이다. 두 차종은 지난해 약 5만9000대가 판매됐다. 최근 3년간 국내에 들어온 중국산 테슬라는 누적 10만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브랜드인 테슬라가 상하이 공장의 압도적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 시장을 장악하면서, 품질 우위를 앞세웠던 한국산 전기차의 방어선이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국산 전기차는 ‘한국 공장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산 테슬라에 이어 BYD 등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한국 공략도 거세지고 있다. BYD는 지난해 소형 SUV ‘아토3’와 중형 SUV ‘씨라이언7’을 앞세워 6000대 이상을 판매했다. 폴스타(폴스타2·4), BMW(미니쿠퍼 SE, iX2), 볼보(EX30) 등도 중국에서 생산한 전기차를 국내에 들여오고 있다.
이 와중에 국산 전기차는 수출 환경마저 악화되고 있다.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의 전기차 수출은 지난해 1만2166대로, 전년보다 87% 줄었다. 보조금 정책 변화와 관세 장벽 강화가 겹치면서 한국산 전기차의 판로가 크게 좁아진 탓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약 2만대(16%) 감소하는 데 그쳤다. 북미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가 한국산을 대체한 것이다.
◇문제는 생태계
현대차는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의 준공을 앞두고 있고, 기아는 전기차 전용 ‘이보(EVO) 플랜트’ 가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가동률 저하가 불가피하다. 배터리를 포함한 부품·소재 협력사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배터리만 봐도, BYD는 전 차량에 자체 배터리를 쓰고, BMW는 중국 CATL과 에스볼트(S-VOLT), 볼보는 EX30에 중국 신왕다 배터리를 적용했다. 테슬라도 중국산 모델에 CATL 배터리를 중심으로 일부 LG에너지솔루션, 일본 파나소닉 배터리를 혼용하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 비중이 커질수록 국내 배터리 업체와 소재 기업이 참여할 여지가 줄어드는 구조다.
국내 자동차 업계 안팎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산 전기차는 중국 정부의 직접 보조금뿐 아니라 낮은 인건비와 저렴한 산업용 전기료 등 간접 지원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한국 내 판매 과정에서는 한국 정부와 지자체의 전기차 보조금까지 받는다. 이중의 지원 구조 속에서 중국산 전기차는 대대적 가격 인하로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