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의 글로벌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대를 돌파했다. 1~11월 판매량을 기준으로 연 환산하면 111만대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글로벌 판매량의 15.2%에 달한다.

2009년 LPG 엔진을 기반으로 한 아반떼 하이브리드와 2011년 가솔린 엔진 기반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처음으로 내놨을 때만 해도 ‘도요타의 아류’라거나 ‘디젤차보다 연비가 못하다’는 식의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하이브리드는 이제 현대차그룹의 상승세를 이끄는 일등 공신이 됐다.

현대차그룹은 미 관세 장벽, 내수 침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 3중 악재를 딛고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727만대)을 전년보다 오히려 0.6% 늘렸다. 하이브리드 판매량이 약 23% 늘며 선전한 게 결정적이었다. 하이브리드는 친환경차를 원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충전 불편 문제가 여전한 전기차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테슬라나 중국 기업 등과 비교해 자율 주행 등 미래차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체적인 AI(인공지능) 역량도 이제 막 쌓기 시작한 상태다. 공을 들였던 전기차는 미국 시장의 수요 부진 등으로 인해 주춤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브리드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미래차 기술 격차를 좁힐 기회를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네시스 하이브리드도 올해 가세

하이브리드의 선전이 뚜렷하게 나타난 대표적인 곳이 주력 시장인 미국이다. 현대차·기아는 작년 미국에서 총 183만6172대를 판매해 3년 연속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이 가운데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33만1023대로, 2024년보다 48.8%나 늘었다. 같은 기간 판매량이 16.3% 줄어든 전기차의 부진을 만회하고도 남은 것이다. 한국에서도 싼타페의 경우 전체 판매량 중 74%가, 팰리세이드는 63%, 카니발은 59%가 하이브리드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이브리드 기술이 진일보하며 상품성도 좋아졌다. 현대차그룹은 과거엔 높은 출력을 내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해 중형차 중심으로만 하이브리드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2024년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설계를 대폭 변경했다. 이제는 2.5L 가솔린 터보 엔진으로 3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내면서도 1L당 14㎞ 이상의 연비도 가능해졌다. 대형·고급 차종에서도 고연비 하이브리드를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1호가 작년 10월 미국 판매를 시작한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였다. 올해는 기아의 대형 SUV 텔루라이드도 하이브리드 버전이 미국에서 출시된다. 제네시스도 브랜드 최초로 GV80 하이브리드를 하반기 출시할 계획이다.

◇하이브리드로 돌아서는 글로벌 기업

세계 1위 도요타 역시 하이브리드를 앞세워 2025년 글로벌 판매량이 3년 연속 1000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글로벌 전체 판매량의 약 40%가 하이브리드다. 지난 5일(현지 시각) 미국 실적을 먼저 발표한 도요타 고급 브랜드 렉서스도 중형 SUV NX 하이브리드와 대형 SUV TX 하이브리드를 앞세워 지난해 판매량 37만대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하이브리드의 선전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전기차 전략도 바꾸고 있다. 전기차로 가기 전의 ‘징검다리’로 하이브리드를 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이다. 포드는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을 대신할 하이브리드 픽업트럭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GM(제너럴모터스)은 충전식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개발에 돌입했다. 르노 역시 유럽에서 ‘E-테크’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한 중·소형 SUV를 앞세워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