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창립 80주년을 맞아 증강현실(AR) 기반의 미래형 전기차 콘셉트카를 공개하며 ‘100년 기업’을 향한 청사진을 내놨다.
기아는 5일 경기 용인시 비전스퀘어에서 창립 80주년 기념식을 열고 미래형 콘셉트카 ‘비전 메타투리스모(Vision Metaturismo)’를 공개했다. 스마트 글라스 기술이 적용된 전면 유리창이 거대한 스크린으로 변하는 AR 기술이 접목됐다. 운전자가 특수 안경 같은 장비를 착용하지 않아도 도로 환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보가 차창 전면에 펼쳐졌다. 카림 하비브 기아 글로벌 디자인 담당 부사장은 “차량 내부는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공간으로, 운전석은 몰입형 레이싱을 즐길 수 있고 탑승자 공간은 차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도로를 달릴 때 화면이나 배경을 F1 트랙으로 바꿔 마치 레이싱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가능해진다.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하면 이동 과정을 더 재미있는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80년 전 자전거 부품 공장에서 출발한 기아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모빌리티 혁신 기업으로 진화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도로가 경주 트랙으로...기아가 그리는 미래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기아의 미래는 도전에 있다”며 “80년의 헤리티지를 가슴에 품고 100년 기업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기아의 80년은 쉽지 않았지만 특유의 저력으로 역경을 이겨냈다”고 말했다.
기아는 이날 80년 역사를 담은 사사(社史)인 ‘기아 80년’을 공개했다. 기아의 역사는 오뚝이 같은 한국 경제의 굴곡과 궤를 같이한다. 1997년 무리한 사업 확장과 외환위기 여파로 법정관리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기아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하지만 1998년 현대차그룹 편입 이후 환골탈태했다. 기아를 부활시킨 핵심은 정몽구 명예회장의 ‘품질 경영’과 정의선 회장의 ‘디자인 경영’이었다. 1999년 카니발 첫 출시를 앞두고 정몽구 당시 회장이 3시간 동안 차량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펴보며 품질을 점검한 일화는 유명하다. 2005년 기아 대표이사가 된 당시 35세 정의선 사장은 2006년 독일 출신 세계적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해 기아의 브랜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기아는 이후 사드(THAAD) 사태로 연 60만대 이상 판매했던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며 철수설까지 불거지는 등 위기를 겪었지만 지난해 글로벌 판매 309만대, 매출 107조원을 달성하고 임직원 3만6000여 명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자전거부터 미래차까지, 도전의 80년
정의선 회장은 이날 기아의 미래에 대해 “앞으로 갈 길이 더 멀고 많은 도전이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 말처럼 기아의 극적인 성장 스토리 뒤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만만찮은 과제들이 남아 있다. 우선 기아는 여전히 대중차 이미지가 강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이나 수익성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제네시스 브랜드를 통해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고수익 구조를 안착시킨 현대차에 비해 기아가 열세인 대목이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브랜드, 특히 BYD와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배터리부터 반도체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해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BYD의 공세는 기아에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부재’와 ‘중국발 저가 공세’라는 샌드위치 위기를 타개할 기아의 핵심 카드가 PBV(목적 기반 모빌리티)다. PBV는 내부 구조를 사용자 목적에 맞춰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전기차다.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비즈니스를 담는 그릇이자 삶의 공간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미래차 모델이다.
기아는 PBV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차량 판매 중심에서 B2B 비즈니스 솔루션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기아는 경기도 화성에 PBV 전용 공장인 ‘이보 플랜트(EVO Plant)’를 짓고 있다. 호출형 택시나 배달 밴 시장을 겨냥한 중형 PBV ‘PV5′ 출시를 시작으로 앞으로 PBV 신차를 줄줄이 출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글로벌 PBV 시장을 선점해 이 분야 글로벌 1위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