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EPA 지난달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개막 전날 폴크스바겐이 전기차 'ID.폴로'를 소개하고 있다.

지난 9월 초 세계 최대 모터쇼인 독일국제자동차전시회(IAA)에서 가장 주목받은 차 중 하나는 폴크스바겐의 ‘ID. 폴로’였다. 글로벌 2위 자동차 그룹이자 독일 대표 자동차 회사의 새 전기차라는 점도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더 눈길을 모은 것은 바로 이 차의 이름이었다. 이 차는 원래 소형 전기차 ‘ID.2’로 알려져 있었는데, IAA에서 ‘폴로’란 이름을 달고 나왔기 때문이다.

폴크스바겐은 전기차 전환이 본격화된 후부터 새로 개발한 순수 전기차에 ‘ID’라는 이름을 붙여왔다. ID는 ‘Intelligent Design(인텔리전트 디자인)’의 줄임말로, 2018년부터 차 크기에 따라 뒤에 붙는 숫자를 바꿔가며 순수 전기차 ‘ID.4’ ‘ID.7’ 등을 내놨다. 숫자가 클수록 큰 차다.

뉴스1/폭스바겐코리아가 wlsks 2022년 공개한 전기차 'ID.4'

이번에 IAA에 공개될 차도 차세대 소형 전기차라 ‘ID.2’란 이름이 붙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은 ‘ID’라는 전기차를 가리키는 표지만 남긴 채, ‘폴로’란 이름을 붙였다. 폴로는 1975년 출시돼 2000만대 이상 팔린 유서 깊은 소형차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틀’의 후속 모델로 여겨졌다. 이런 역사와 전통을 전기차 시대에도 이어가겠다는 게 폴크스바겐의 뜻이었다.

폴크스바겐은 앞으로 나올 다른 순수 전기차도 ‘ID.티구안’ 등처럼 과거의 유명 자동차 이름들을 되살릴 예정이다. 토마스 셰퍼 폴크스바겐 브랜드 CEO는 IAA에서 “폴크스바겐의 모델명은 세대를 아우르는 상징이며, 고객들의 삶과 추억 속에 자리해 왔다”며 “전기차 시대에도 친숙한 이름들이 계속될 것이고, ID. 폴로가 그 시작”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EPA 지난달 IAA에서 소개된 벤츠의 'GLC 전기차'

독일의 또 다른 대표 고급차인 메르세데스 벤츠도 폴크스바겐처럼 ‘EQ’란 이름을 전기차에 붙여왔지만 이제는 기존 모델 이름을 앞세우는 추세다. 벤츠는 IAA에서 중형 SUV GLC의 전기차 모델 ‘디 올 뉴 GLC 위드 EQ 테크놀로지’를 선보였다. 기존에는 이와 동급인 순수 전기 SUV ‘EQC’가 있었는데, 다시 기존 이름으로 선회한 것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벤츠 전기차 EQC의 모습

페라리도 지난달 신형 고성능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를 새로 선보였는데 여기에 ‘849 테스타로사’(Testarossa)란 이름을 붙였다. 1980년대 수퍼카 중 하나로, 페라리가 새 친환경차를 선보이면서 페라리 팬들이 잘 아는 과거의 이름을 부활시킨 것이다. 이 차는 트윈 터보 V8 엔진과 함께 전기 모터 3개를 달아 1050마력의 출력을 내는 차다.

/페라리 페라리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849 테스타로사'

이 같은 변화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은 전기차가 새로운 제품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과 다른 이름을 많이 써왔다. 하지만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뎌지면서 전기차를 낯설어하는 소비자가 여전히 많다. 그런 점을 감안해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전략이 바로 작명에 담긴 것이다. 또 전통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으로 나오는 중국 등의 신생 자동차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역사와 브랜드 가치가 담겨 있는 옛 이름을 쓰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