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올 뉴 아반떼를 출시하며 선보인 ‘제2의 청춘카’ 광고 장면. 시니어 모델들이 온라인 티켓 예매에 성공한 다음, 함께 차를 타고 공연을 보러 가는 내용이다./현대차

작년 정년퇴직한 이모(61)씨는 최근 6000만원 상당 준대형 세단을 샀다. 이씨는 “월급 받을 땐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퇴직금으로 여유가 생기니 마지막으로 희망을 이룰 수 있을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출퇴근에 쓸 차가 아니라 1년 넘게 고민했다. 손주를 자주 돌봐야 하고 여행도 앞으로 더 다니고 싶은 마음에 구매를 결심했다”고 했다.

◇車 시장, 2030 지고 5060 뜬다

31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50~60대의 신차 등록은 작년 전체의 43.5%를 차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 50~60대가 등록한 신차(국산·수입 승용차 전체)는 45만4864대로, 2014년(32만1211대)보다 41.6% 늘어났다. 같은 기간 50~60대 주민등록 인구가 26.3% 늘어난 것을 감안하더라도, 신차 등록 증가율이 인구 증가율을 크게 뛰어넘은 것이다. 신차 등록 비율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한 연령대는 60대이다. 2014년 8%에서 작년 16.2%로 두 배가 됐다.

20~30대가 고금리, 집값 상승 등으로 자동차 구매를 주저하는 사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50~60대의 구매가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년 동안 50~60대의 신차 등록 비율은 꾸준히 높아졌고, 20~30대는 낮아졌다. 특히 20~30대는 자금력이 떨어져 자동차를 할부로 사는 일이 많아 고금리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생애 주기별로 자동차를 사지 않고, 차량 공유 서비스 등 대안을 이용하는 이도 여럿이다. 40대도 2019년부터 50대에게 1위 자리를 내주며 신차 등록 비율이 점차 낮아졌지만, 작년 2위(24.5%)를 차지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그래픽=김현국

◇하이브리드·가성비 車 찾는다

50~60대의 자동차 구매가 늘어난 배경에는 생활 방식 변화가 있다. 과거 이 세대는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뒀다는 이유로 자동차 구매를 꺼리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엔 은퇴 이후 ‘액티브 시니어’를 꿈꾸는 이가 많다. 여행·운동 등 여가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노후의 추억을 만들고자 차가 더 필요해진 것이다. 전통적으로 이 세대에선 세단이 인기지만, 야외 활동에 편리한 SUV를 선호하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작년 50대 이상의 신규 등록 차량에서 SUV인 쏘렌토 하이브리드와 셀토스가 각각 2·5위를 차지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에 대한 높은 선호도도 눈에 띈다. 작년 50대 이상이 가장 많이 등록한 차 1위는 그랜저 하이브리드, 2위는 쏘렌토 하이브리드였다. 2022년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2위(1만 4200대)를 차지한 적은 있지만, 이 세대에서 등록하는 신차 5위 안에 하이브리드 차 두 가지가 든 것은 처음이다. 자주 운전해야 할 차로서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차량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아반떼와 셀토스가 3·5위를 차지한 것도 2000만원대의 ‘가성비’를 염두에 둔 결과로 분석된다. 중장년층의 수요가 고급 세단에 집중된다는 공식이 깨지고, 각자 생활 방식과 수준에 맞는 신차 구매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제2의 청춘카…장년층 광고 봇물

젊은 층의 전유물로 여겨 온 자동차 광고에도 장년층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작년 배우 김해숙(69)이 출연한 BMW 코리아 광고는 유튜브 조회 91만회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현대차는 7세대 아반떼 광고로 장년층 여성들이 밤늦게 모여 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을 보여주며, ‘제2의 청춘카’란 문구를 사용했다.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을 새 차에 적용하기도 한다. 1986년 출시한 첫 번째 그랜저(일명 각그랜저) 외형을 적용한 7세대 그랜저(2022년 출시)는 50대·60대·40대 순서로 많이 구매했다. 50대가 35.5%, 60대가 26.8%를 차지하며 절반이 넘었다. 앞서 2016년 출시한 6세대 그랜저가 50대·40대·30대 순서로 많이 팔린 것과 대비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중장년층을 위해 미래 지향적 기술과 예스러움을 절묘하게 섞은 자동차가 늘고 있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이런 변화는 거세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