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IRA(인플레 감축법) 가이던스(시행령)를 이달 말쯤 마련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자동차업계와 우리 정부가 전기차·배터리 보조금 관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치열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미국 의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혀온 조 맨친 민주당 상원 의원이 한국 요청 사항을 콕 집어 “들어주면 안된다”며 재무부 장관에 편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졌다. 조 맨친 의원은 지난 8월 시행된 IRA에 보조금 차별 조항을 포함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미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을 약화시키는 어떠한 완화책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AP 연합뉴스

◇끝까지 발목 잡으려는 조 맨친

13일(현지 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조 맨친 의원은 재닛 옐런 재무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 “일부 자동차 제조업체와 외국 정부가 IRA의 45W 규정에 따라 북미산이 아닌 렌트·리스 차량이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게 허용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게 허용되면 기업들의 북미 투자에 대한 관심이 멀어질 것이라고 장담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제조를 의무화하는 엄격한 규칙이 없다면 IRA가 중국과 다른 적국의 생산에 보조금을 지급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맨친이 언급한 IRA 섹션 45W 규정은 상업용 전기차에 관한 내용으로, 보조금 지급 요건에 북미에서 조립해야 한다는 문구가 없어 렌트·리스·승차 공유 차량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재무부에 최근 의견서를 내고 “차량 리스 제공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 여부를 명확히 하는 지침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조 맨친 의원이 한국이 낸 의견을 겨냥해 “법안의 구멍을 이용하려는 것이니 해주지 말라”고 압박을 가한 것이다.

조 맨친 의원은 민주당 내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로, 중간 선거 이전 민주·공화 동석인 구도에서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해왔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석탄 산업이 발달한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지역구로, 바이든이 앞서 발의했던 기후 변화 대응을 담은 ‘더 나은 재건법’(BBB)을 강하게 반대하면서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중간 선거를 앞두고 법안 통과가 절실했던 민주당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법안을 수정해 IRA 법안을 제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조 맨친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를 의식해 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그렇더라도 옐런 재무 장관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운명의 2주... 우리 정부 5번째 미국행

이와 별도로 한국 정부는 최대한 미국 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12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이도훈 외교부 2차관과 호제이 퍼낸데즈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이 만나 “IRA의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과 관련, 건설적 논의를 지속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퍼낸데즈 차관은 “한국의 우려를 처음부터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모든 각도에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윤관석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을 포함한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이 워싱턴DC를 방문해 IRA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창양 장관을 포함한 산업부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IRA 때문에 미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5번째다. 지난 9월부터는 한·미 정부 협상단 실무협의체를 가동 중이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공장을 짓기로 한 조지아주 지역구의 라파엘 워녹 민주당 상원의원은 보조금 조항 적용을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 말까지 늦추는 수정 법안을 발의하고 지난달 옐런 재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IRA 시행의 융통성을 발휘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도 의견서를 내고 “배터리 광물·부품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며 “광물과 부품별로 건건이 조건을 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허윤 서강대 교수는 “우리로서는 IRA의 일부 조항들이 급하게 만들어지면서 우방국은 물론,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 맨친 미 민주당 상원 의원

민주당 소속이지만 강한 보수 성향으로 여야 동석이던 기존 상원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했다. 석탄 산업 중심지인 미 북동부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지역구로 ‘기후변화 대응’을 담은 바이든 정부의 ‘더 나은 재건법’을 반대했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서 보조금 차별 조항 삽입을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