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민영 자동차 회사 지리자동차가 전기차 브랜드인 지커(Zeekr)의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고 12일(현지 시각) 로이터가 보도했다. 지커는 지리차가 테슬라에 대항하고자 지난해 4월 출범시킨 회사다. 내년 2분기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자금 조달을 목표로 지난주 미 당국에 비밀리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상하이 모터쇼에서 지리차 산하 지커가 공개한 전기차 '001'. /블룸버그

중국 배터리·전기차 제조 기업 BYD도 지난 6일 “미국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하겠다”면서 미국 진출 방침을 밝혔다. 미·중 간 정치·경제적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도 “정치는 정치, 사업은 사업”이라는 기조로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중국 기업이 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도 미국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1년 만의 미 증시 상장 시도

지커는 지리자동차가 M&A(인수·합병)를 통해 인수한 해외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만든 ‘럭셔리 전기차’ 브랜드다. 순수 중국 전기차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하겠다는 지리차의 야심이 담겨 있다. 미국 증시에 먼저 입성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중국 전기차 업체 니오·샤오펑·리오토의 뒤를 따르겠다는 속내다.

지커가 지난해 말 출시한 ‘001′ 모델은 경쟁 차종인 테슬라 모델Y 가격보다 시작 가격(5346만원)이 높은데도 올해 생산 가능한 모든 제품(6만600대)이 지난 9월 매진됐다. 내년엔 유럽·미국에도 ‘001′을 출시할 계획이다.

지커의 상장은 지난해 6월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의 미 증시 상장 이후 중국 대기업으로서는 처음이다. 당시 디디추싱은 “민감한 개인 정보를 미국에 유출했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의 눈 밖에 난 뒤 1년 만에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했었다.

최근 중국 기업에 대한 미 증시 당국의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진 것도 지리차가 미 증시를 두드리는 이유로 꼽힌다. 올해 초 미국 정부가 미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바이두를 포함한 중국 대표 기업 약 160곳을 ‘회계 투명성 부족’을 이유로 상장폐지 예비 리스트에 올리면서 미·중 갈등은 고조돼왔다. 그러다 지난 8월 중국 정부가 한 발 물러서 미 규제 당국의 회계 감독권을 일부 인정하면서, 대거 퇴출 위기는 넘겼다.


◇미 정부 보조금도 포기 못 한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이 북미산 전기차·배터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인플레 감축법) 혜택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리차 계열의 전기차 회사 폴스타는 SUV ‘폴스타3′를 내년 말부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볼보 공장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지급되는 보조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지리차 자회사인 볼보는 이미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를 미국 현지 생산해 IRA 혜택을 받고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도 줄줄이 미국 진출을 선언하고 있다. BYD의 스텔라 리 부사장은 지난 6일 중국 매체 인터뷰에서 “미국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미국을 존중하지만, 중국 업체가 일부 프로세스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몇몇 법안을 수정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BYD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국가에서 원자재를 조달하라는 IRA 조항에 대응하기 위해 칠레에서 배터리 원자재를 조달하는 프로젝트까지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중국 배터리 업체인 엔비전AESC그룹도 미국 2곳에 배터리 공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엔비전그룹은 최근 켄터키주에 벤츠 공급용 배터리 공장을,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BMW 공급용 배터리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중국 최대 배터리 업체 CATL은 포드·BMW에 공급하기 위한 북미 지역 120만대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추진하다 지난 10월 보류를 결정했다. 하지만 해외 언론들은 “IRA 영향 검토를 위해 잠시 연기했을 뿐 절대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배터리 업계 한 전문가는 “테슬라가 중국에서 연 100만대 생산 체제를 갖추고 사업하는데, 중국 기업들이라고 못 할 게 어딨겠느냐는 심산”이라며 “해외 광산 투자 등 우회로를 통한 배터리 원자재 공급은 미국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