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의 CEO인 로버트 스카린지는 지난 9일(현지 시각) 콘퍼런스 콜에서 저가형 배터리인 LFP(리튬·철·인산) 배터리에 대해 “저렴한 비용으로 최적의 성능을 내게 하는 장치”라며 “LFP 배터리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주로 만들어 온 LFP 배터리는 한국 업체의 주력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가격은 싸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설치 공간이 필요하고 차량도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스카린지는 그러나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인기 등 차량 사이즈가 커지며 LFP 단점이 상쇄되고 있다”며 최근 차량 판매 경향도 LFP 배터리 탑재와 들어맞는다고 밝혔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저렴한 LFP 배터리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0년 테슬라를 시작으로 지난해 벤츠와 폴크스바겐, 올해는 포드와 리비안 등이 LFP 배터리 탑재를 선언했다. 현대차도 지난 3월 ‘중장기 전동화 전략’ 공개 자리에서 “LFP배터리 등 배터리 타입을 다변화할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값싼 차량에나 적용될 것이라고 여겨졌던 LFP 배터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NCM VS LFP 배터리

◇가격에 성능까지 LFP 재평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LFP 배터리 채택 기조는 차량 사이즈가 커진 것 외에도 차량 수요 둔화 우려가 주요 원인이다. 이미 테슬라와 벤츠, 포드가 중국 내 가격을 최대 22% 인하하는 등 완성차 업체의 가격 전쟁이 시작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로 인해 전기차의 가장 비싼 부품인 배터리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리서치 회사인 BMI에 따르면 지난 1년간 LFP 배터리 가격은 NCM 배터리보다 30%가량 쌌다. LFP 배터리의 주 원료인 철이 NCM 배터리의 주 원료로 희소 광물에 속하는 니켈·코발트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니켈, 코발트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포드 CEO 짐팔리는 “LFP 배터리를 사용함으로써 15%가량 제조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치명적 단점으로 여겨졌던 낮은 에너지 밀도와 짧은 주행 거리가 빠르게 개선되는 것도 LFP 재평가 이유 중 하나다. 중국 1위 배터리 기업 CATL은 지난 8월 차세대 LFP 배터리인 M3P 배터리를 공개했다. 이 배터리는 기존 LFP에 망간과 아연, 알루미늄을 추가한 것으로 에너지 밀도가 ㎏당 230Wh(와트시)로 한국 기업의 주력인 NCM(㎏당 250Wh) 배터리에 근접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CATL은 가격을 낮게 유지한다는 전제로 내년쯤 이 배터리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글로벌 투자 은행 UBS는 최근 “최근 전기차 배터리 부족 사태가 LFP 배터리 확충에 디딤돌이 될 것”이라며 2030년 15%에 머물 것이라던 LFP 배터리 비율 전망을 40%로 상향했다.

◇한국 배터리사 대책은

국내 업체들도 뒤늦게 LFP 배터리 생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내년 중국 난징 생산라인을 LFP 라인으로 전환하고, 2024년엔 미국 미시간 공장에 신규 LFP 라인도 구축할 예정이다. LG엔솔은 전기차가 아닌 ESS(에너지저장장치)용 제품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배터리 업계에선 전기차용 LFP 배터리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란 관측이 나온다. SK온도 연내 LFP 배터리 개발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 기업에 대한 가격 경쟁력이다. 한 배터리 전문가는 “생산 라인 교체가 동반되는 LFP로 선회는 만만치 않은 비용을 수반할 것”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기존 원자재 구성의 다변화로 NCM 배터리를 발전시키는 데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격이 비싼 코발트를 제외한 ‘코발트 프리’ 배터리나 저렴한 알루미늄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배터리 가격을 낮추겠다는 것이다.

☞LFP·NCM 배터리

리튬(L)·철(F)·인산(P)을 주원료로 제조되는 LFP 배터리는 중국 업체들이 주로 생산한다. 국내 업체들의 주력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보다 가격이 30%가량 싸다. 낮은 에너지 밀도로 주행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지만 최근 기술 개발로 성능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