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과소비는 도로에서도 벌어진다. 홀로 큰 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연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판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게 에너지 빈국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2000원짜리 물건 하나만 사도 무료 배송을,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온갖 음식을 금세 배송해주는 ‘배달의 천국’이다. 여기에다 코로나 사태 이후 ‘차박(차에서 숙박)’ 열풍이 일면서, 밤마다 전국 곳곳에선 냉난방을 위해 대형 SUV를 5~6시간씩 공회전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산업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0 에너지 총조사’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수송 분야 에너지 소비는 6년 전보다 20.4% 증가했다. 산업(14.6%), 상업·공공(8.4%), 가정(4.8%)의 에너지 소비 증가율을 크게 앞지른다. 수송 분야가 국가 전체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20.1%에서 21.4%로 늘었다. 수송 분야 에너지 소비 증가는 대부분 자동차 에너지 소비가 늘어난 탓이다.
1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2000cc 이상 중대형 승용차 등록 대수는 683만2000대로 2015년 말보다 44.5% 급증했다. 특히 2000~2500cc 승용차는 83% 폭증했다. 같은 기간 1600~2000cc, 1000cc 미만 승용차는 각각 8%, 20.2% 증가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게다가 승용·승합차 탑승 인원은 10대 중 6대(58.8%)가 한 명이다. 탑승 인원이 2명도 27%에 이른다. 평균 탑승 인원은 1.69명이다. 또 승용차 요일제 참여는 78.8%가, 승용차 함께 타기는 83.8%가 ‘참여 안한다’고 했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생활 여건이 나아지면서 자동차 부문의 에너지 소비 증가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소형차 우대 정책’ 등으로 에너지 소비 증가를 최소화하고, 과도한 배송 경쟁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디젤 소비의 주범인 화물차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 김천욱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이 대형차 중심 소비패턴이 바뀌지 않는 것은 기업에서 좋은 소형차를 내놓지 않는 것도 주요 원인”이라며 “대형차 일변도의 자동차 문화를 개선하는 데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