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IT 제품 위탁생산업체인 대만 폭스콘(훙하이정밀공업)이 지난달 18일 타이베이에서 다목적 전기차 ‘모델B’와 전기 픽업트럭 ‘모델V’ 시제품을 공개했다. 2020년 10월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폭스콘은 딱 1년 뒤인 작년 10월 세단·SUV·버스 3종을 공개했고,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난 뒤 2개 차종을 추가로 선보인 것이다.
2년 전 폭스콘이 애플에 ‘애플카’를 맡겨달라고 공개 구애할 때만 해도, 전자제품을 만들던 회사가 과연 자동차를 잘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류양웨이 폭스콘 회장은 이날 미디어 행사에서 “2년 전 많은 분들이 우리를 의심했지만, 우리는 1년 만에 전기차 3종을 공개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속도”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우리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에서 이룬 것을 전기차 시장에서도 달성할 것”이라며 “앞으로 세계에서 팔리는 전기차의 거의 절반을 생산하는 것이 목표”라는 야심을 드러냈다. ‘전기차 위탁생산’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대만 경제의 제2의 부흥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대만의 세번째 병기, 전기차
대만은 그동안 폭스콘이 주도하는 전자제품 위탁생산과 TSMC가 주도하는 반도체 위탁생산으로 올해 1인당 GDP가 한국을 뛰어넘을 것이란 예상이 나올 만큼 급성장했다. 대만이 쥐고 있는 세 번째 병기가 바로 전기차 위탁생산이다.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는 이날 행사에서 “전기차가 반도체 외에 대만의 미래 발전에 매우 중요하고 발전 전망도 높다”고 말했다.
2030년 전기차 시장은 1조1050억달러(약 1567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커스텀마켓인사이트). 폭스콘 입장에선 작년 매출(약 304조원)의 5배에 달하는 시장이 열리게 된다. 류양웨이 회장은 “단기적으로는 2025년 전기차 시장 5%를 점유하는 것이 목표”라며 “그렇게 되면 매출이 1조대만달러(약 44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독자적인 전기차 브랜드를 만들어 고객사와 경쟁할 생각은 없다”며 “테슬라의 전기차도 위탁생산하고 싶다”고 했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만은 내수 시장이 작아 전 세계 고객을 상대로 한 ‘위탁생산’ 산업을 키우고 있다”며 “성장이 둔화한 전자제품의 다음 먹거리로 전기차를 집중 육성하려 한다”고 말했다.
◇내년 미국·태국서 본격 생산
폭스콘은 컴퓨터·스마트폰·가전제품의 연간 공급량이 약 56억개에 달하며 중국 등 전 세계 24국에서 현지 생산과 관련된 공급망을 관리 중이다. 폭스콘은 전기차 생산에서도 이런 자신들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MIH’(Mobility in Harmony)라는 이름으로 전기차에 필요한 모든 부품 및 소프트웨어 회사들과 공급망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모듈화된 주요 부품을 다수 개발해 고객사가 필요한 다양한 전기차를 즉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1600여 개 업체로 구성된 MIH 컨소시엄에는 삼성SDI와 CATL(배터리), 영국 반도체 기업 ARM, 미국의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참여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폭스콘은 전자업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객으로 알려진 애플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20여 년간 거래해왔다”며 “철저한 ‘을’의 정신과 원가 절감 노하우를 전기차에 접목시키면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인 성과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지난해 폭스콘은 미국 스타트업 로즈타운의 오하이오주 공장을 인수했는데, 지난 9월부터 이곳에서 로즈타운의 픽업트럭을 위탁생산하기 시작했다. 내년엔 이 공장에서 미국 스타트업 피스커의 소형 SUV를 위탁생산하기로 했다. 태국에도 국영기업 PTT와 합작 공장을 세워 대만·미국·태국 3각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류양웨이 회장은 “2024년 태국에서 연 15만~20만대, 미국에서 연 60만대를 생산하고 2027년엔 생산량이 총 300만대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