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폴크스바겐은 지난 13일(현지 시각) 중국 자율주행 반도체 기업 호라이즌 로보틱스와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은 “24억유로(약 3조3000억원)를 투자해 합작사 지분 60%를 소유하게 된다”며 “여러 반도체 칩을 하나로 통합하는 기술을 연구할 것”이라고 했다. 폴크스바겐의 발표는 미 상무부가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며 대중 압박 강도를 더 한층 강화한 지 채 일주일도 안 돼 나온 것이었다. 로이터는 “폴크스바겐은 이미 미국 퀄컴, 스위스 ST마이크로 같은 서구 반도체사와 관계를 맺고 있어 중국 시장만을 겨냥한 칩 개발에 나서려는 것”이라며 “이는 중국 내 전기차 시장에서 BYD·테슬라 등과 경쟁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이 반도체, 전기차 같은 첨단 산업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나서자, 글로벌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중국과 비(非)중국으로 이원화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 산업과 교역 분야에서 양자택일을 요구받는 기업들이 생산 체계를 분리하는 식으로 사업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을 짜는 것이다. 중국 시장을 그대로 놓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생산 분리 통해 중국 시장 안 놓친다

아우디도 중국 창춘에 3조5000억원을 투입해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다. 연 15만대 규모로 공장이 준공되는 2024년부터 중국 시장만을 겨냥한 전기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BMW는 최근 2조8000억원을 들인 중국 랴오닝성 선양 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BMW의 중국 공장으로선 세 번째로, BMW의 중국 생산량은 기존 70만대에서 83만대로 늘어나게 됐다. BMW는 영국에 있던 ‘미니’ 전기차 생산 거점도 중국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독일 화학 소재 기업 머크도 최근 중국 장쑤성에 반도체 생산 설비 공장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중국만을 위한 생산 시설을 갖추는 흐름은 유럽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의 거센 중국 배제 신호에도 중국 시장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투자가 실보다 득이 많다고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유럽 기업의 대(對)중국 투자는 올해 오히려 더 늘었다. 시장조사업체 로디엄그룹에 따르면 유럽 기업의 올 상반기 중국 투자는 작년 상반기보다 15% 증가했다. 로디엄그룹은 “중국 업체와 합작사나 거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 많아 철수가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크다”고 전했다.

일본의 혼다도 최근 중국 공급망 분리 작업에 들어갔다. 혼다는 7000억원가량을 투입해 중국에 새 전기차 공장을 짓고 있다. 중국 둥펑자동차, 광저우자동차와 2개 합작사를 운영하고 있는 혼다의 경우 중국 생산량이 162만대로 북미 생산량(127만대)보다 많다.

◇중국 해외 기업 지원 강화안 이용해야

미·중 대립 격화는 글로벌 기업들로서는 힘겨운 변화지만, 미·중이 서로 공급망을 강화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기회 요소도 생겨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컨대 중국 정부는 올해 말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종료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인플레 감축법(IRA)을 시행해 자국 전기차 시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나서자 중국도 분위기가 바뀌며 보조금 지급이 1년 연장됐다. 완성차 업체들로선 반길 수밖에 없는 결정이다. 폴크스바겐이 최근 중국 지역 이사회를 설립해 더 많은 자율권을 주고, 중국에서 고전 중인 현대차가 최근 베이징에 단독 쇼룸을 열어 내년 전기차 판매 계획을 가다듬은 것도 보조금 정책 연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조만간 해외 기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 정책 발표도 예고하고 있다. 17일(현지 시각) 차이나 데일리 등 중국 매체에 따르면 자오천신 국가발전개혁위 부주임은 “중국은 해외 기업 시설 투자와 생산, 설비 운영이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첨단 기술 분야에 투자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인프라 구축 지원과 보조금 등 인센티브 제공을 확대하는 방안이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