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광산업체 유러피안 리튬사 직원들이 오스트리아 볼페스부르크에서 리튬 채굴에 나선 모습/유리피안 리튬

미국 완성차 업체 GM은 지난 11일(현지 시각) 호주 광산 업체 퀸즐랜드퍼시픽메탈에 6900만달러(약 995억원)를 투자해 지분을 확보한다고 발표했다. GM은 “전기차 배터리용 니켈·코발트 확보를 위한 계약”이라며 “최근 통과된 인플레 감축법(IRA)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IRA는 미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받기 위해선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생산한 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배터리 소재를 중국산에 의존해오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호주, 유럽 광산 업체와 합작사를 차리거나 공급 계약을 맺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배터리 광물 선점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IRA 시행으로 중국을 대체할 자원 확보가 사활이 걸린 현안으로 떠오른 까닭이다. 리튬 같은 배터리 핵심 자원은 남미가 더 풍부하지만, 이들 지역에서 자원 국유화 움직임이 불거지며 외국 기업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것도 완성차 업체들의 ‘서구 광산 러시’를 부추기고 있다.

◇ 니켈·코발트·리튬 중국산 의존 탈피 IRA 대응 목적… 변수 많은 남미 대신 호주, 유럽으로

세계 4위 완성차 업체인 스텔란티스는 지난 10일 호주 광산 업체 GME 리소스와 니켈과 코발트 공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스텔란티스는 지난 6월엔 5000만유로(약 700억원)를 투입해 독일의 에너지·광물 회사인 벌칸 에너지의 지분 8%를 사들였다.

폴크스바겐도 지난달 29억달러(약 4조1500억원)를 투자해 배터리용 소재를 생산하는 벨기에 유미코어와 합작사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은 앞서 8월에는 캐나다 정부와 전기차 배터리 광물 공급을 위한 협약(MOU)을 맺었다. 벤츠와 BMW도 최근 각각 캐나다 록테크 리튬, 호주 유러피안 리튬과 리튬 공급 계약을 맺었다.

그동안 전기차용 배터리 원자재 확보 경쟁의 주전장은 세계 리튬의 55%가량이 매장돼 있는 남미였다. 그러나 칠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지에서의 리튬 생산에는 걸림돌이 많다. 암석에서 바로 리튬을 채굴할 수 있는 호주, 북미 광산과 달리 이 지역은 염분을 머금은 지하수를 증발시키는 방식을 통해 리튬을 생산한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남미에서의 리튬 생산은 더 저렴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남미에서 자원 국유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도 위험 요소다. 올 초 중국 전기차 업체 BYD는 칠레 정부로부터 리튬 광산 계약을 따냈지만, 광산 개발에 따른 식수 부족을 우려하는 현지 주민들의 시위에 직면했다. 지난 6월 칠레 대법원은 결국 ‘정부가 현지 주민들과 사전에 합의하지 않았다’며 BYD와의 계약을 파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전문가들이 이 판결에 대해 남미의 자원 국유화 흐름과도 관련이 깊다고 분석한다.

◇배터리 내재화와도 연관

완성차 업체들의 광물 확보 경쟁은 배터리 직접 생산이라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의 비중을 감안할 때, 테슬라나 BYD처럼 완성차 업체들이 배터리를 만드는 게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광물 자원 확보, 배터리 합작사를 통한 기술 이전을 진행시켜 배터리 내재화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얘기다. 실제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배터리사와 합작사를 만든 GM 주변에선 기술 유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GM이 배터리 안전성 확인을 이유로 국내 배터리사의 제조 노하우가 담긴 민감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전기차 업계의 변화한 업계 판도도 이런 움직임을 뒷받침한다. 내연기관차 시대엔 발주처인 완성차 업체가 갑의 위치에 서고 부품사는 완성차 업체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전기차 시대엔 완성차 업체가 배터리사에 매달리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짐 팔리 포드 CEO가 방한해 직접 국내 배터리 업체를 찾은 것이 단적인 예다. 실제 배터리사들은 넘치는 완성차 업체들의 러브콜로 공급 계약 액수는 물론 부대 조건 등에서도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계약을 따내고 있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초 기술이 발전하면 배터리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급망 문제로 배터리 가격은 더 오르고 있다”며 “광물이 무기화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만큼 국내 업체들의 다각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