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가 부활하고 있다.

지난 1~9월 국내 경형 승용차 판매량은 9만8520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7% 증가했다. 이미 작년 한 해 판매량(9만5603대)을 넘어섰다. 경차 판매가 전년 대비 증가세로 돌아선 것은 8년 만이다. 국내 경차 판매는 지난 2012년 20만대로 정점을 찍었다가 감소세가 지속돼 지난해엔 10년 전의 반 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소득 수준 향상으로 큰 차와 SUV 선호 현상이 짙어진 데다, 주고객이던 20대 사회 초년생들은 차량 공유 시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중고차 시장에 나오는 경차는 곧바로 팔릴 정도로 인기다. 큰 차로 쏠리던 자동차 소비자들이 경차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된 것은 코로나와 경기 위축, 기름값 폭등이 누적된 상황에서 신차 ‘캐스퍼’로 효과가 물꼬를 튼 것으로 풀이된다.

◇‘캐스퍼 효과’ 가장 주효

자동차 업계는 경차 판매가 크게 늘어난 가장 큰 이유로 ‘캐스퍼 효과’를 꼽는다. 그동안 경차 시장에서 선택지는 기아의 모닝과 레이, 한국GM의 스파크 3종이 전부였다. 이 차종들은 최근 5~6년간 세대 변경이 이뤄지지 않아 구형 모델로 인식돼왔다. 제조사 입장에선 만들어도 수익이 거의 남지 않는 경차에 투자하기를 꺼리고, 소비자는 경차를 외면하면서 악순환이 이어졌다. 하지만 ‘반값 임금’으로 상징되는 ‘광주형 일자리’(광주글로벌모터스)를 통해 현대차가 위탁생산하는 캐스퍼가 작년 9월 출시되면서 경차 시장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캐스퍼에 ‘경형 SUV’라는 새 개념을 도입해 공간 활용성과 실용성을 높였다. 반자율주행 시스템인 ‘스마트 크루즈’(앞차와 거리 유지하며 달리는 기능)처럼 경차에선 보기 드문 첨단 기능도 탑재했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원스톱 차량 주문이 가능한 것도 젊은 층 중심으로 호응을 얻었다. 캐스퍼는 매달 3000~4000대씩 팔리며,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 4만5000대를 돌파했다. 월 1000~3000대씩 팔리는 기아 레이와 모닝, 쉐보레 스파크와 함께 ‘경차 판매 월 1만대’ 시대를 다시 열고 있다.

◇코로나·경기 위축도 경차 인기 요인

코로나와 경기 위축도 경차 수요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코로나로 자차 이동 수요가 증가하면서 ‘세컨드카’로 경차를 사려는 사람이 늘고 차박(차에서 숙박)을 위해 경차를 활용하는 사례도 증가했다. 기아 레이의 경우 경차인데도 공간 활용도가 높아 최근에는 캠핑용 차량으로 개조하는 사례가 늘며 인기를 끌고 있다. 기아는 이런 수요에 맞춰 운전석을 포함한 전 좌석이 풀폴딩(180도 접힘)되도록 상품성을 개선한 모델을 지난 8월 출시했다. 이 차는 운전석 통풍시트와 공기 청정기능까지 갖췄다. 레이는 지난달 3806대가 팔리며 캐스퍼(4032대) 뒤를 바짝 쫓았다.

경기 침체와 유가 상승 영향도 컸다.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에 따르면, 최근 저렴한 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경차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중고차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차인 쉐보레 스파크가 판매되기까지 걸린 기간은 지난달 평균 23일로 전월 대비 11일 단축됐다. 매물이 나온 뒤 11일 만에 팔렸다는 뜻이다. 케이카 관계자는 “스파크 중고는 700만~800만원대 가격으로 경차 중 가장 저렴하고, 가격 대비 안전사양이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아 특히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GM은 스파크를 생산하는 창원공장을 리모델링하며 수익성이 낮은 스파크 단종을 검토해왔지만, 인기가 치솟자 이를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스파크 단종을 결정하지 않았다”며 “수요 상황을 지켜보면서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