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가 2004년 최초 개통한 이래 줄곧 국내 기술로만 제작돼온 고속철도 차량 수주전에 해외 업체 참여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철도 업계가 비상이다. 국가 기간산업 보호를 위해 적자를 감수하며 근근이 사업을 유지해온 현대로템과 부품사들은 “해외 업체 참여를 무분별하게 허용하면, 철도 산업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4일 철도 업계에 따르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조만간 KTX 평택오송선 고속차량(EMU-320) 120량을 포함해 총 136량의 고속차량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그런데 스페인 철도차량 업체 ‘탈고’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국내 중소기업이 공개 사업질의서를 보내며 입찰을 준비하는 사실이 알려졌다. 탈고가 입찰에 나서면 2005년 프랑스 알스톰이 참여했다가 탈락한 이후 17년 만에 해외 업체가 참여하는 게 된다.
하지만 국내 고속철 관련 부품사 191사는 ‘철도차량 부품산업 보호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에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비대위는 지난 1일 호소문에서 “해외 업체 진출이 본격화하면 순수 국산 기술을 보유한 국내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며 “전체의 96%가 영세 사업장인 부품사 생존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철도 주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정부가 국내 시장을 보호해 달라”고 호소했다.
현대로템과 국내 부품사들이 반발하는 것은, 이들이 그동안 국가 기간산업 수행 명목으로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고속철 사업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로템 철도사업은 지난 2018년~2020년까지 3000억원대 누적 적자를 냈고, 지난해 겨우 흑자로 돌아섰다. 현대로템은 IMF 위기 때 ‘빅딜’을 통해 철도 관련 3사가 통합된 국내 유일의 철도 차량 제조사다. 현대로템은 국내 전동열차 사업은 최저입찰가를 제시하는 중소기업들에 자리를 내주고, 고속철 사업에만 집중해왔다. 그러나 국산 부품 생태계 유지를 위해 국산 부품 사용을 유지하면서 저가로 수주한 영향으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고속철 사업은 발주 가격이 낮고 수익이 나지 않아 해외 업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스페인 2위 철도차량 업체 탈고는 해외 수주 실적을 쌓기 위해 입찰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저가 수주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철도 시장 1위 기업은 중국 CRRC, 2위는 프랑스 알스톰, 3위는 독일 지멘스이고 탈고는 10위권 밖으로 알려졌다.
코레일은 현재 조달청에 등록한 업체는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코레일은 “관련 법에 따라 사전 규격 공개 절차를 통해 관련 업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라며 “적기 도입과 안전 확보 등을 종합 검토해 추진하고, 입찰 전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