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뉴 블랙배지 고스트'는 600마력의 출력에도 알루미늄 플랫폼과 100㎏가 넘는 흡음재를 사용해 정숙성이 뛰어나다. 고속 주행에도 노면 소음과 풍절음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 고스트란 이름과 딱 들어 맞는다. /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의 대표 세단 ‘뉴 고스트’의 블랙배지 모델을 타봤다. 고스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롤스로이스 모델이다. 플래그십 모델인 초대형 세단 ‘팬텀’보다 한 단계 아래지만, 벤츠 S클래스보다 더 큰 대형 세단이다. ‘뉴 블랙 배지 고스트’는 2020년 9월 국내 출시된 뉴고스트를 젊은층을 겨냥해 디자인과 튜닝을 새롭게 한 모델로 작년 11월 국내 출시된 뒤 한국의 IT·핀테크 업계의 신흥 부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럭셔리카의 최정점에 있는 롤스로이스는 2030년까지 모든 신차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 2도어 쿠페 모델 ‘레이스’와 컨버터블 모델 ‘던’의 단종 절차를 밟고 있다. 고스트의 내연기관 모델이 단종되려면 아직 멀었겠지만, 그래도 언제 이 차를 또 타볼 수 있을지는 기약 없는 일이다.

판테온 그릴의 압도적 외관, 5억5500만원부터 시작하는 가격에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 일단 시승부터 했다. 차를 운전한 지 10여 분 만에 ‘쇼퍼 드리븐’(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이란 생각이 깨졌다.

전장 5546㎜, 너비 1979㎜의 거대한 체격에 맞지 않게 액셀에 발을 올리자마자 매끄러운 출력이 느껴졌다.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번갈아 밟으며 급격한 가·감속을 해봐도 무게 2490㎏에 달하는 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액셀을 조금 더 세게 밟자 배기량 6750cc에 달하는 엔진이 뿜어내는 600마력, 91.8kg.m의 힘이 그대로 느껴졌다. 고속도로로 나가 시속 100㎞를 넘긴 후 로 모드를 켜자 기어 변속 속도가 50% 이상 빨라지며 한층 민첩한 주행이 가능했다. 차체가 낮은 스포츠카를 타는 느낌도 났다.

풍절음과 노면 소음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알루미늄 플랫폼과 100㎏가 넘는 흡음재를 통한 정숙성은 어떤 내연기관차보다 뛰어났다. 고스트란 이름 그대로였다. 조향의 반응성 역시 경쾌했다. 뒷좌석에 앉아 시승을 했을 때도 시속 100㎞가 넘는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최근 흔해진 반자율주행 기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넣을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한다.

이 차량의 깊고 진한 블랙 색상은 45㎏ 무게 페인트를 미립자 단위로 바른 것이고, 판테온 신전을 형상화한 대형 프론트 그릴에는 머리카락 굵기 100분의 1 수준의 얇은 특수 크롬이 가미됐다.

시작가는 5억5500만원이지만 롤스로이스 구매자들은 수억원에 달하는 옵션을 선택한다고 한다. 고객 주문에 맞춰 옵션이 달라져 풀옵션이라는 개념도 없다. 광섬유 램프 1340개를 수작업을 통해 달아 밤하늘처럼 만든 ‘스타 라이트’ 옵션에 자신의 별자리를 추가하는 식이다. 이 회사가 제공하는 차량 색깔만 4만4000가지다. 이 중 원하는 색이 없다면 원하는 대로 만들어준다. 특정한 꽃, 애완견의 털 색깔 등 고객이 원하는 어떤 것도 구현해 준다.

지난해 롤스로이스 차량은 국내에서 255대가 팔렸고, 고스트는 109대가 팔렸다. 롤스로이스 관계자는 “롤스로이스는 타는 물건이 아니라 수집하고 싶은 대상”이라며 “255명은 그냥 자동차가 아니라 롤스로이스를 구입한 고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