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시기와 규모 등이 오늘(28일) 결정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날 세종시 중기부 청사에서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를 열고 관련 심의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결과는 오후 8시 이후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현대차그룹과 전국,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 중고차 업계의 수년간 다툼은 형식적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다만, 이날 사업조정심의위가 내놓을 권고안이 현대차그룹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성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져 중고차 업계는 단식 투쟁 등 반발을 예고하고 있다.
◇사업 개시 시기, 매입 범위가 핵심
지난달 17일 중기부는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를 통해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중고차 판매 시장 진출 자체는 결정됐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지난 1월 중고차 업계는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에 대해 사업조정 심의를 신청했다. 사업조정 제도는 대기업의 사업 진출로 중소기업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 정부가 대기업의 사업 범위 축소를 권고하는 제도다. 정부가 3년 범위 안에서 사업 개시 시기를 유예하거나 사업 규모를 축소할 것을 권고할 수 있다. 이 권고에 따라 현대차그룹의 사업 개시 시기와 규모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문제는 절충이 요구되는 사업조정 단계에서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즉시 중고차 판매 사업을 개시하겠다고 주장하는 반면, 중고차 업계는 보험사와 연계한 중고차 보증 프로그램 등을 개발 중이기 때문에 3년 진출 유예 등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중기부 주변에선 내년 판매 시작으로 절충안이 나올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다만, 사업 관련 정비 시간 등을 고려하면 이는 사실상 현대차그룹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중고차 매입 범위도 핵심 충돌 지점이다. 현대차그룹은 5년 10만㎞ 이내의 중고차만 판매하겠다고 주장하면서도, 일단 중고차 매입은 이에 구애받지 않고 다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5년 10만㎞ 이외 차량은 경매 등을 통해 다른 중고차 업체에 넘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고차 업계는 매입 행위도 수익이 나는 것이기 때문에 판매를 하는 5년 10만㎞ 이내 차량만 매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에서 중고차 경매업을 진행하는 건 현대글로비스다. 현대글로비스는 현재 경기도 분당과 시화, 경남 양산에 중고차 경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12만대 정도를 취급했다. 매입 범위가 늘어날수록 현대글로비스가 취급하는 물량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측은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정의선 회장 승계 문제와 직접적으로 얽혀 있다”며 “매입 범위 증대는 결국 현대글로비스 이익의 증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 회장이 지분 19.99%를 가진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재편 관련 핵심 회사로 평가 받는다. 정 회장의 원활한 승계를 위해선 현대글로비스 가치 증대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글로비스 역할 늘리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연합회 측 주장이다. 중고차 관련 굵직한 결정 때마다 현대차와 기아가 아닌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출렁이는 것도 이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 측은 “중고차 시장 진출은 승계나 지배구조 재편과는 무관하게 수년전부터 추진돼 온 사업”이라고 했다.
◇중고차 업계, 단식 투쟁 이어간다
이 사안은 표면적으론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명명되지만 주인공은 현대차그룹이다. 완성차 업계 중 한국GM이나 르노자동차코리아, 쌍용차는 당장의 구조조정이나 청산 등을 걱정해야 해 사업 진출 여력이 없다. SK렌터카 등도 거론되지만 제조부터 판매까지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완성차 업계와 비교해 사업 규모가 작다. 중고차 시장 규모는 약 40조원으로 평가된다. 한 중기부 심의위원은 “현대차그룹에게 수조원의 사업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심의 과정에서 다각도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현대차그룹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인해 일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선 제대로 검토가 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중고차 가격 상승이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설명이나 대책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70% 가량 점유율을 가진 현대차그룹의 입김이 자동차 시장 전반에서 더욱 세질 것이고, 이는 가격 상승으로 연결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기부 측은 “중고차 매매 시 허위 매물이나 사기 등의 발생으로 국민 불편과 피해가 큰 상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중고차 업계의 판매에 따른 피해가 과대하게 부풀려져있다는 견해도 있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케이카나, 엔카닷컴 등 중고차 플랫폼 등을 통해 중고차 시세가 공개 돼 있는 상태에서 소비자들이 헐값 중고차를 비싸게 구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일부 무자격 판매상들이 소비자 피해를 야기하는 부분은 감시와 처벌 규정 강화 등 법과 제도를 손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사업 조정 제도 3개월 만에 종료
이번 사안 관련, 중기부가 사업조정 심의를 접수 3개월만에 끝내는 데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중기부는 지난 21일 돌연 “2월부터 당사자 간 자율 조정을 진행했으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며 “4월 사업조정심의위를 개최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최장 2년 내 결정하게 돼 있는 사업조정은 최소 6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게 보통이다. 본지가 다른 사업조정 신청 사건 등의 진행을 살펴보니,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 접수된 사건은 물론 지난해 7월 접수 사건도 진척이 없는 상태다.
이를 두고 중기부 주변에선 6월 지방 선거 등으로 인해 새정부로 결론을 미룰 시 변수가 생길 수 있어 무리하게 일정을 밀어부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협상의 당사자인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측도 21일에야 4월 결론 소식을 통보 받았다고 한다.
중기부 측은 “이미 적합업종 심의 때 3년간 살폈기 때문에 더 이상 진행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조정 심의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는 엄연히 다른 심의이기 때문에 이 같은 발언은 사업조정 심의 제도 취지를 몰각(沒却)하는 발언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측은 “중기부가 소상공인의 마지막 보루인 사업 조정 과정에서 약자의 편에 서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았다”며 이날부터 단식 투쟁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