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법으로 금지됐던 택시 합승이 올해 1월 합법화됐다. 2019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시범 사업으로 스타트업 코나투스가 ‘반반택시’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고, 이를 검증해 법을 개정·시행한 것이다. 대신 택시 합승은 오로지 플랫폼 사업자가 앱을 통해 사용자 신분과 성별 등을 인증하고 ‘동성(同性)끼리’만 합승이 가능하다. 남자 승객은 남자 승객, 여자 승객은 여자 승객과 합승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월 규제개혁위원회가 동성끼리만 합승이 가능한 현재 택시법 시행규칙을 두고 “과도한 규제”라며 국토교통부에 규제 재검토와 개선 권고를 내렸다. 규개위가 개선 권고를 내리면, 국토부는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2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국토부는 설문 조사 등 사용자와 국민 의견을 청취해 다음 달 중 규개위에 재검토 내용을 보고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와 국토부의 판단 등에 따라 다른 성별과 합승을 규제하는 ‘이성(異性) 합승 규제’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와 시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업계 내에선 “이성 합승 규제는 한국·일본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 “승객 안전과 장기적인 서비스 운영을 위해선 같은 성별끼리 제한해야한다”는 의견이 모두 나온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동성끼리만 합승을 하라는 것은 21세기판 남녀칠세부동석”, “성범죄 등 여성 안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규제” 등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한국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 vs 사고 나면 합승 영원히 사라져
지난 1월 규제개혁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익명의 업계 이해관계자가 지적한 이성 합승 규제의 문제점은 크게 아래와 같다. ①동성 간 합승이 가능하면 매칭 가능성이 낮아서 합승이 어려워진다. 승차난 해소를 위한 합승 허용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②한국·일본에만 있는 규제로, 해외 사용자와 글로벌 플랫폼은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인은 한국에서 합승을 이용할 수 없다. ③녹음, 녹취, 구조요청 등 조치를 앱에 구현하면 이성 합승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국토부 확인 결과, 이성 합승 규제는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규제는 맞는다. 실제로 이 규제 때문에 해외 플랫폼은 한국에서 아직 합승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외에서 합승 서비스를 운영 중인 우버는 지난해 “한국에서도 올해 초 합승 서비스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아직 내놓지 못했다. 본인인증과 성별 인증 등이 가능한 기능을 별도로 만들어야 하고, 관련된 정보를 수집·관리하는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날 규개위에서도 이러한 정보 수집이 합승 서비스 도입의 장애물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다. 또한 빠른 합승을 원하는 승객은 ‘이성 간 합승’이 가능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권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반면 국토부는 규개위에 “우리나라는 회식 문화 등으로 음주 문제나 합승 취약 시간에 여성들도 택시를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안전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택시 내 사고·폭행 등은 남남, 여여 간에도 벌어질 수 있지 않느냐’는 규개위 위원의 질문에 국토부 관계자는 “여성의 약자적 입장을 고려했다”고도 했다. 약 2년 동안 택시 합승 시범서비스를 운영해온 코나투스도 우려 섞인 시각이다. 코나투스 관계자는 “정부의 판단 결과를 따라야 하겠지만, 혹시라도 이성 합승을 도입했다가 사고라도 난다면 그동안 어렵게 풀었던 합승 서비스 자체가 사라질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2013년 대구에선 택시에 불법 합승한 남성이 여성을 성폭행한 다음 살해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규개위는 합승 규제에 이의를 제기한 업계 편을 들어줬다. 심의 취지는 ‘동성끼리만 가능한 현재 합승 제도는 합승 기회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해외에는 없는 규제’라는 판단이다. 한 규제개혁위원회 의원은 “이날 참석 의원 절반 이상이 ‘이성 합승 규제가 과도하다’는 의견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21세기판 남녀칠세부동석 vs 여성 보호 위한 최소한의 장치
시민 여론도 반반으로 나뉜다. 코나투스는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재 이성 간 합승 규제 폐지에 대한 찬반 의견’를 묻는 질문에 60%가 반대(같은 성별끼리만 택시 합승을 하고 싶다는 의미)했다. 여성 응답자의 76%가 이성 합승 규제 폐지에 반대했고, 남성은 47% 였다.
이성 택시 합승에 반대하는 댓글을 보면, ‘이슬람 국가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규제’, ‘애초에 모르는 사람과 타는 것도 불편한데 같은 성별끼리만 타라는 것도 웃기다. 21세기판 남녀칠세부동석’라며 성별을 가르는 것 자체가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규제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있다. ‘어차피 여성은 남성과 합승 가능한 택시는 사용하지 않을 테니, 있으나 마나 한 규제일 것’이라는 것이다. 여성 박 모(33) 씨는 “설령 합승을 이용한다 해도 같은 여성과 타는 합승 택시를 이용할 것”이라며 “하지만 그와 별개로 다른 서비스가 나오는 것 자체를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성 택시 합승에 찬성하는 의견은 대부분 합승으로 인한 범죄를 우려 했다. ‘택시 기사가 대부분 남성이라, 남성 합승 손님이랑 짜고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 것’, ‘과거 합승이 사라진 이유를 잊어서 그렇다, 칼부림 나고 난리도 아니었다’, ‘조만간 이성 합승로 온갖 강력범죄가 튀어나올 것’ 등의 댓글이 달렸다. 남성 김 모(36) 씨는 “딸이 있는 아빠 입장에서, 여성이 늦은 밤 남성과 타는 합승 택시는 걱정이 된다”며 “남성 입장에서도 같은 남성과 택시를 타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대 여성 주 모 씨는 “만약 동성끼리만 택시를 타는 것이 성차별이라면, 이런 차별이 있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탓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여전히 택시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종종 벌어지는데, 이런 범죄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국민 설문조사를 마친 상태”라며 “아직 여러 의견을 종합적으로 듣는 단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