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포드자동차가 7일(현지 시각)부터 일주일간 미국·멕시코·캐나다 등 북미 8개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감축하기로 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때문이다. ‘2030년까지 신차 판매 40%를 전기차로 달성하겠다’는 장밋빛 비전으로 한껏 뛰었던 포드의 주가는 생산 차질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에 지난 한 달간 27% 가까이 급락했다. 반도체 부족으로 지난 1월 미국 자동차 판매량도 전년 동월 대비 9% 감소해 100만대를 겨우 넘겼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연초부터 반도체난으로 신음하고 있다. 작년 내내 지속됐던 반도체 부족 사태가 올해는 완화될 것이란 기대는 무너지고, 2년째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BMW·벤츠 등 일부 완성차 업체들은 궁여지책으로 ‘터치 스크린’이나 ‘전동 시트’ 같은 필수 사양까지 제거한 차량을 출고하고 있다.

◇현대차 판매 코로나 초기 수준… 반도체는 왜

국내 완성차 업계도 비상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판매량이 전년 동월 대비 12.1% 감소한 28만대에 그쳤다. 작년 1월(32만대)뿐 아니라 2020년 1월 실적(30만대)보다도 못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 초기, 중국산 와이어링 하네스(전선 뭉치) 부품이 들어오지 않아 국내 공장 문을 수시로 닫았던 2020년 2월의 27만대 수준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 해외 모두 주문은 밀려 있지만 반도체 때문에 차량 재고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비인기 차종도 주문하면 출고까지 2개월은 걸린다”고 말했다. 한국GM은 반도체 부족으로 지난달 판매량이 지난해 1월의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올해 내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폴크스바겐의 조달 책임자인 무라트 악셀은 최근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 세계 반도체 부족이 올해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계가 너도나도 반도체 재고를 확보하려고 경쟁하면서 가수요마저 발생하는 상황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사들은 수백 개 반도체 중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당장 문제가 생긴다”며 “이 때문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반도체 부품이라도 미리미리 확보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대부분이 가전용과 수요가 겹치는 ‘28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공정’의 범용 반도체라는 점도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가전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자동차의 전자 기능 확대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도 동시에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규 한양대 겸임교수는 “3나노, 2나노 공정 경쟁을 펼치는 반도체 업체들이 구식 기술인 28나노 공정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공급 부족이 완화되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마이너스 옵션 확대로 대응…가격 인상 전략도 한계

반도체 공급 부족이 당장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서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의 전자 기능을 일부 제거한 ‘마이너스 옵션’을 확대하고 있다. BMW는 올해 한국에 들여오는 주력 세단 3·4·5 시리즈에서 중앙 스크린의 터치 기능을 뺐다. 차량 내비게이션·라디오·공조 등을 예전 방식인 ‘조그 다이얼’로 조작해야 한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전동 시트의 메모리 기능(좌석 위치를 기억해주는 기능)이 빠지면서 헤드레스트, 좌석 길이 등 일부를 수동으로 조절해야 하는 2022년형 GLE 쿠페를 판매 중이다. 최근 GLE 쿠페를 계약한 한 소비자는 “1억원 가까운 차량 좌석을 일부 손으로 조작해야 한다고 해서 2022년형이 아니라 2021년형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GM은 1분기 출시할 초대형 SUV ‘타호’에서 전후방 주차 보조·후방 자동 제동 기능을 빼기로 했다. 대형 SUV 트래버스는 2열 열선 시트도 뺐다. 기아는 K8 후방 주차 충돌 방지,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기능을 포기하면 자동차 출고를 앞당겨주고 가격도 할인해준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계는 지난해 생산 감소에 대응해 가격은 올리고 할인폭은 줄여 수익성을 높였다”면서 “하지만 첨단 기능이 하나둘씩 빠지면 가격 인상 전략도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