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자동차가 일본 내수 승용차의 섀시(차대·플랫폼) 개발을 종료하기로 했다. 대신 5년 뒤부터는 닛산이 만든 섀시 2종을 공급받는다. 섀시는 자동차의 하부 뼈대로, 그 위에 보디(차체)를 올려 조립한다. 일본 완성차 기업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는 승용차 섀시 개발을 접는 건 초유의 일이다.
미쓰비시의 결정을 두고 현지 업계에선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 혼자 모든 것을 다 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기차 후발 주자인 미쓰비시로선 신차 개발비(3000억~5000억원)의 절반을 차지하는 섀시 개발에 매여 있기에는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 포드가 독일 폴크스바겐의 전기차 플랫폼을 빌려 쓰기로 한 것도 같은 차원의 선택이다. 포드는 자체 플랫폼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경쟁사인 GM이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적용한 신차를 연말부터 내놓기로 했기 때문에 급한 대로 폴크스바겐이 먼저 개발한 것을 쓰겠다는 것이다.
전기차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라이벌 관계를 가리지 않고 협업에 나서고 있다. 테슬라가 올해 전기차 100만대 판매를 목표로 질주하고 있는 가운데, 유럽에 이어 미국까지 내연기관차 규제를 강화하면서 완성차 업계는 발등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 생존이 걸린 전기차 개발 비용을 최소화하고 제품 출시 속도를 높이려면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플랫폼·배터리…뭉쳐야 산다
혼다는 미국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GM과 동맹 수준의 협력 관계를 맺었다. 혼다는 GM 자율주행 자회사 GM크루즈에 투자해 자율주행·소프트웨어 개발을 같이 해왔는데, 최근엔 북미용 전기차 부품을 50%까지 공유하기로 했다. 혼다는 소형 플랫폼, GM은 대형 플랫폼 개발에 주력해 이를 공유하기로 했다. 각자 강점이 있는 분야로 역할을 분담해 최대한 빨리 더 많은 전기차 신차를 내놓겠다는 전략이다.
푸조시트로엥과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원래 2개의 회사가 하나로 합쳐진 회사들이다. 업계 하위권이었던 이들은 전기차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올 초 ‘스텔란티스’라는 이름으로 합병했다. 산하 14개 브랜드가 전기차 플랫폼을 공유하고, 부품도 같이 조달하기로 했다. 독일 수퍼카 포르셰도 같은 폴크스바겐그룹 산하 아우디와 전기차 플랫폼을 공동 개발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배터리 회사들과도 경쟁적으로 손을 잡고 있다. GM-LG, 포드-SK, 폴크스바겐-노스볼트, 현대차-LG 등이 합작사를 설립한 데 이어 조만간 스텔란티스와 메르세데스 벤츠도 합작을 추진 중이다. 배터리 공장은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데, 서로 비용을 나누고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돈·시간 절약, 부품 조달 위해
자동차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은 개발비용을 줄여 빨리 제품을 출시해 수익을 내려는 것이다. 특히 연간 10만대 이상 팔아야 수익이 나는 전기차에 완성차가 처음부터 거액을 투자하기엔 부담스럽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후발 주자 입장에선 고유 플랫폼을 3~4년 공들여 개발하기보다 내구성·안전성이 검증된 것을 공유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전기차 플랫폼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부품사들이 한정돼 있다는 점도 기업들이 뭉치는 이유다. 한 글로벌 부품사 관계자는 “전기차 핵심 부품사들은 완성차 업체에 거의 ‘갑’의 지위에 있고, 물량이 적은 완성차 업체엔 공급을 꺼린다”며 “뭉쳐서 규모를 키워야 저렴하게 부품을 조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적고 조립이 단순한 전기차는 업체별로 플랫폼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공유가 확산되는 이유다. 업계에선 전기차 플랫폼이 공통화·표준화되면 향후 전기차 경쟁력은 결국 스마트폰처럼 디자인과 직관적인 편의성 같은 기능에 따라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결국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자율주행, 운영 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가 될 것이고, 이것이 전기차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