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2030년 미국 신차 판매 절반을 친환경차로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공개했다. 앞서 중국·유럽이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발표한 데 이어, 세계 2위 자동차 판매 시장인 미국까지 친환경차 전환 목표를 제시하면서,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지게 됐다. 예상보다 빠른 전환에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5일 백악관에서 열린 친환경차 행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프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랭글러 리미티드 루비콘을 시승한 후 내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2030년부터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절반을 친환경차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AP연합뉴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5일(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전기차·수소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 무공해(ZEV·Zero Emission Vehicle) 자동차가 2030년 미국 판매 신차의 50%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전기차에 있다”며 “우리는 다시 (내연기관차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표면적으로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지지를 나타냈다. GM·포드·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회사는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2030년까지 신차 판매 40~50%를 전기차로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차·도요타도 각자 성명을 내고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 전반에 ‘전기차 전환’의 후폭풍이 거세게 불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이다. 전기차는 부품 수가 1만9000개 정도로, 내연기관차(약 3만개)보다 35% 이상 적다. 조립 공정이 줄면서 필요 인력도 감소한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은 이런 흐름에 맞춰, 선제적 인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다. 포드는 이날 미국 내 희망 퇴직자 1000명을 받겠다고 밝혔다. 혼다는 최근 2000명 이상 희망퇴직을 받았고, 이미 절반 이상이 퇴직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3월 최대 5000명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다임러와 BMW, GM 등은 지난해 1만4000~2만명의 인력 구조 조정을 시행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앞으로 10년간 자동차 산업 내 일자리가 최대 30%까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전망

국내 자동차 업계는 노조 반발로 인력 구조 조정을 못 하는 대신, 신규 채용을 중단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2019년부터 신입 생산 직원 채용을 전면 중단하고 정년퇴직으로 직원 수를 줄이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부품 협력사까지 고려하면, 전기차 전환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만 30만~40만개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전환 계획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현대차는 당초 전기차 판매 비율을 2035년까지 46%로 끌어올릴 계획이었지만, 이를 5년은 더 앞당겨야 한다. 기아도 2030년 북미 전기차 판매 비율을 26%로 계획했는데, 이를 2배 높여야 한다.

그나마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자체 생산이 가능하지만, 수출 비율이 높은 한국GM·르노삼성은 아예 전기차 생산 능력이 없다. 노사 관계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외 본사에서 전기차 생산 계획·물량을 확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GM·르노는 자국 내 생산을 우선하고 있어 전기차 전략에 한국 공장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