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5월, 기아 영업맨 오경렬(56) 부장은 19년 전 왼쪽 다리에 발병한 근육암의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은 자다가 다리에 힘이 들어갔을 뿐인데, 다리가 골절됐다. 그는 바로 병원에 입원해야했지만, 머릿 속에는 고객과의 약속이 먼저 떠올랐다. 자신에게서 차를 구입한 고객의 신차에 번호판을 달아주러 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는 목발을 짚고 곧바로 고객에게 향했다. 고객에게 다리가 부러졌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고 난 뒤에야 병원에 입원했다. 아내는 울면서 화를 냈지만, 그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생각에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고객이 하루빨리 새 번호판을 달고 차를 몰고 싶어 했다”며 “아무리 사소한 약속이라도 꼭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경렬 기아 서울 은평갤러리지점 부장은 두번이나 찾아온 암 때문에 평생 18번의 대수술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고, 지난달 누적 판매고 4000대를 기록해 기아 판매왕인 ‘그랜드 마스터’에 올랐다.

암 투병을 이겨내고 차 4000대 판매로 기아 판매왕에 오른 오경렬 부장./기아

기아 입사 5년차이던 1997년, 한창 발로 뛰며 고객을 만나던 그에게 근육암이 발병했다. 4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견뎌 암을 이겨냈지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3년 뒤인 2010년 4월, 고객의 상가집에 조문을 갔다가 미끄러져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안그래도 암 투병으로 약해진 다리뼈가 크게 손상돼 이때부터 목발에 의지하는 신세가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11년 5월, 이번엔 또다른 부위에 암이 찾아왔다. 다행히 한번의 수술과 3개월간의 항암치료로 완치됐지만, 다리 골절상의 후유증이 말썽이었다. 워커홀릭인 그는 충분히 쉬지 않고 목발을 짚고 고객을 찾아다니느라 바빴던 터라, 뼈가 곪고 썩는 증상으로 뼈 이식 등 13차례 추가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수시로 한두달씩 병원 신세를 지던 그가 판매왕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고객에게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오 부장은 전화보다는 꼭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러 고객을 찾아가고, 연말에는 300~400명의 고객에게 장문의 손편지를 썼다. 고객이 부탁한 것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잊지 않고 챙겼다.

기아 판매왕 오경렬 부장은 해마다 연말이 되면 300~400명의 고객에게 손으로 직접 쓴 연하장을 보낸다. /오경렬 부장 제공

덕분에 단골 고객들이 주변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기 시작했다. 수술로 입원해 있을 때도 전화와 후배 직원들 도움으로 차를 팔았다. 그는 퇴원 후 집에서 쉬지 않고, 피주머니를 차고 회사로 출근하는 일벌레였다. 그런 성실성을 높게 본 한 중소기업 사장은 그를 친한 동생처럼 여기며 23년간 업무용 차 수십대를 사줬다.

오 부장은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 받는 것이 가장 저에겐 큰 보람”이라며 “진심을 다하면 정말 통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대학생으로 성장한 세 아들로부터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 바랄게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