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소재 혁신’이라는 또 다른 방법을 통해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도전에 나섰다. 친환경 플라스틱을 차 문 안쪽이나 대시보드에 적용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자동차 자체를 철이 아닌 초경량 특수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업체까지 생겨났다. 고급차의 필수품으로 여겨졌던 천연 가죽 시트는 친환경 직물 시트로 대체되고 있다. 자동차 외관부터 내부까지 ‘친환경’ 소재를 얼마나 썼느냐에 따라, 자동차의 가치도 달라지는 추세다.

철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밴 - 자동차 업계가 소재 혁신을 통해 '친환경차'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 영국 전기 상용차 스타트업 '어라이벌'은 강철이 아닌 플라스틱 패널로 밴을 만들었다. /어라이벌

◇플라스틱이 철을 대체

BMW가 지난 3일 국내에서 사전 계약을 시작한 전기차 iX는 ‘자동차 소재 혁신’의 대표 사례다. BMW iX는 차량 측면·후면·지붕 같은 주요 뼈대에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을 대거 적용했다. ‘카본 케이지’로 불리는 이 차체에는 알루미늄 합금, 초고장력 강철이 탄소섬유 플라스틱과 최적의 비율로 혼합돼 있다. 탄소섬유 플라스틱은 무게가 강철의 4분의 1 수준이고, 강성은 5~10배 더 높다. BMW iX가 준대형 SUV임에도 완충 시 주행거리 600㎞(유럽 기준)에 도달한 비결이다. BMW는 “10년 넘게 탄소섬유 기술에 투자해 고품질 탄소섬유를 전기차 i 시리즈에 대거 적용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BMW iX는 이 밖에도 전면 그릴에 폴리 우레탄 코팅을 해 작은 흠집은 스스로 복원하는 기능을 갖췄다. 따뜻한 바람을 5분간 쐬어주면 복원된다.

자동차 전체 강판을 플라스틱으로 대체한 업체도 있다. 영국 전기 상용차 스타트업 어라이벌은 섬유 강화 플라스틱의 일종인 ‘열가소성 복합재’로 밴과 버스를 만들고 있다. 이 회사의 로브 톰슨 재료 책임자는 “차량 경량화로 차가 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100% 재활용이 가능한 친환경 자동차”라고 말했다. 그는 “무게가 자동차 일반 강판의 절반 이하이고 강도는 더 높아 접촉사고 정도에는 찌그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소재는 재료 자체에 색을 입힐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덕분에 이 회사는 자동차 공정 중 환경에 가장 악영향을 끼치는 ‘페인트 공정’을 완전히 없앴다.

재활용 소재 시트도 - BMW는 전기차 iX에 가죽 대신 재활용 플라스틱을 활용한 인테리어를 적용했다. /BMW

◇가죽보다 직물 시트가 더 고급

차량 내부에도 친환경 소재 사용이 대폭 확대되고 있다. 기존에는 직물 시트가 적용된 차는 ‘싼 차’, 천연 가죽 시트로 돼있으면 ‘비싼 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차 한 대에 소 3마리의 가죽이 들어간다'고 비판할 정도다. 하지만 이제 직물 시트가 고급차에 탑재되고 있다. 섬유 기술 발달로 방수성·내구성이 높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질감까지 가진 직물이 등장하면서, 식물에서 추출한 재료로 만든 직물 시트는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전기차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른바 ‘비건(vegan·채식주의자) 인테리어’다.

포르셰는 자사 최초의 순수 전기차 타이칸에 ‘레더리스(letherless·가죽 없는) 인테리어’를 1000만원대 선택 사양으로 제공하고 있다. 레이스 텍스라는 소재를 적용해 고급스러움과 내구성을 동시에 갖췄다. 폴크스바겐은 2019년 공개한 전기차 콘셉트카 ID.스페이스 비전에 사과주스를 만들고 남은 껍질로 만든 소재, 즉 ‘애플 스킨’을 시트에 적용했다. 재규어랜드로버는 전기차 i페이스를 통해 53개의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직물 시트를 선보였다. 현대차도 전기차 아이오닉5에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원사로 만든 바닥 매트와 페트병 재활용 소재로 만든 도어트림(문 안쪽) 등을 적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