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 16일 공개한 플래그십 전기차 ‘EQS’는 앞 좌석 대시보드가 전부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로 덮여 있다. 가로 길이가 56인치에 달하는 ‘MBUX 하이퍼스크린’은 양산차에 탑재된 디스플레이 중에선 가장 크다. 운전석 앞쪽엔 디지털 계기판이, 가운데엔 지도와 음악 정보가, 동승석 앞쪽엔 주행 정보가 나온다. 화면별로 따로 조작이 가능하며, 동승석 자리에선 TV도 볼 수 있다.
이제 운전석은 더는 운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조작하는 조종석이다. 그래서 이 공간을 요즘은 ‘디지털 콕핏’(Cockpit)이라 부른다. 머지않아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하면, 운전자도 주행 중 영화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고, 화상회의로 업무를 볼 수도 있다. 운전석이 영화관, PC방, 사무실로 진화하는 것이다. 운전의 경험을 바꾸기 위해 완성차 업체는 물론, 전자·IT 업체들까지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차 유리창이 영화관이 되는 시대
현대모비스는 지난달 31일 자체 개발한 디지털 콕핏 ‘엠빅스’를 공개했다. 중앙 부분 터치스크린은 상단과 하단으로 나뉘는데, 상단 디스플레이를 동승석 앞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동승자는 이 화면을 스마트폰과 연결해 유튜브나 영상을 즐길 수 있다. 비행기 조종간을 닮은 운전대의 손잡이 부분엔 심전도 센서가 탑재돼, 운전자의 상태를 상시 모니터링한다. 운전자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면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아로마향이 분사된다.
BMW는 최근 인공지능(AI)을 업그레이드한 운전석 시스템 ‘iDrive8’을 새로 선보였다. AI가 운전자의 주행 습관을 학습해 자주 가는 목적지를 기억했다가 추천해 준다. BMW 관계자는 “음성인식·자연어 처리 기술이 고도화돼 운전자가 차와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각종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며 “덕분에 각종 버튼을 최소화해 실내가 더 깔끔해졌다”고 설명했다.
‘자율주행차’ 시대를 대비한 선행 기술도 많다. 프랑스 르노의 콘셉트카 ‘모르포즈’는 전통적인 의미의 계기판을 없애고, 그 자리에 영상 등을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차량 속도 등 핵심 주행 정보는 운전대 안에 내장한 10.2인치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삼성전자의 전장 부품 자회사 하만은 올 초 온라인으로 열린 CES에서 운전석 앞쪽에 49인치 QLED(양자점 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이 대형 디스플레이는 주행 중엔 운전대 아래쪽으로 내려왔다가, 정차 시엔 올라와 차 앞쪽 유리창을 꽉 채운다. 영상을 띄우고, 좌석 머리 받침대에 내장된 헤드셋을 쓰면 ‘개인용 영화관’이 따로 없다. 스크린 옆으론 자동차 탑승 공간을 촬영할 수 있는 작은 카메라가 달렸다. 운전 중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릴 수 있게 한 것이다. 글로벌 디지털 콕핏 시장은 2018년 147억달러 규모에서 2025년 359억달러(약 40조5000억원)로 2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콕핏에 어떤 기능 넣을까’…창의력 싸움
디지털 콕핏은 이미 나와있는 다양한 IT 기술을 차량 적재적소에 잘 조합한 것이다. 그래서 콕핏 개발자들이 운전 중 느꼈던 개인적인 경험들이 새 콕핏 아이디어로 채택되는 일도 많다. 현대모비스의 엠빅스는 공조 장치에 ‘무풍 에어컨’을 적용했는데, 에어컨이나 히터를 쐬면 바람을 직접 맞아 피부나 눈이 쉽게 건조해진 데서 착안했다. 벤츠의 대형 디스플레이는 ‘왜 동승석 탑승자는 멀뚱멀뚱 앞만 보고 가야 할까’란 고민에서 시작됐다. 최근 디지털 콕핏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는 ‘음성인식’ 기술이다. 완전 자율주행 이전까진 운전자가 운전대를 쥐고 있어야 하고, 그 상태로 기능을 활용하려면 말로 해결하는 게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